#4. 개성 만점 내 친구들

by 하만다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힘든 일이 참 많다. (한국에서는 아니겠냐만은.) 그때마다 큰 힘이 되어 주는 것은 아마도 주변의 친구일 것이다. 나 역시 1년 여 간의 캐나다 생활에서 외롭고 지칠 때마다 힘이 되어주었던 친구들이 있었다.


#펠리페(Felipe)

어학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 우리 반에서 가장 말 많고 유쾌했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브라질에서 온 펠리페라는 이 친구는 수업 중 선생님의 질문에 항상 제일 먼저 대답했던 애였다. 그래서인지 다른 누구보다 가장 편하게 느꼈던 친구였다. 쉬는 시간 혼자서 무얼 해야 할지 몰라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앉아 있을 때 펠리페는 가장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 주기도 했고, 나 역시 이 친구와는 마음 편하게 잡담을 나누었다. 영어도 곧잘 하던 친구라 이 애와 대화를 하다 보면 나도 영어를 잘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이 친구는 나중에 나에게 사귀자며 데이트 신청을 했었는데, 한국에 남자 친구가 있기도 했고 남자로서 생각도 해본 적 없기에 단칼에 거절했더니 그다음 날부터 날 피하기 시작하면서 일순간에 멀어져 버렸다.

학원 쉬는 시간, 헤니, 펠리페와 함께 - 그는 순식간에 멀어져버렸다

#모에(Moe)

모에 역시 어학원에서 같은 반이었는데, 성격이 쾌활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해 바라만 봐도 기분 좋은 친구였다. 우리는 어학원을 다니면서 동시에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는 공통점 때문에 급속도록 가까워졌는데, 일이 끝나면 또는 각자의 day off 때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밴쿠버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놀러 다니곤 했다. 이 친구의 장점은 뭐든 긍정적으로 본다는 것이었는데 밴쿠버에서 만난 운명의 남자와의 연애에 있어서도 고난과 고비마다 그 긍정의 힘이 발휘되곤 했다. 워낙에 대단하고 파란만장한 연애였기 때문에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Day off, 브런치 맛집에서 모에와 - 모에는 엄청난 긍정의 여신이다

#메리(Mary)

팀홀튼에 처음 들어가서 Training을 받을 때였다. 학원에서는 아무 말이나 막 늘어놓아도 선생님과 친구들은 철석같이 알아들어 영어 대화에 문제가 없었지만 일터는 달랐다. 천천히 들어도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인데 주문대(우리는 Till이라고 불렀다.)에서 손님과 단둘이 마주 보고 서서 빠르게 말하는 그 주문을 알아듣기란 나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어찌나 요구사항도 많은지, 한국에서는 크림치즈 바른 베이글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달라는 주문이 Sundried tomato bagle에 Herb&Garlic cream cheese를 두 스쿱 바르고, 그 위에 베이컨을 추가, 그 와중에 베이글은 Double toseted 하고 커피는 우유 2번, 설탕 대신 sweetner를 넣어달라는 게 아주 기본적인 주문이었다. 나중에야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그 틸 앞에서 벌벌 떨었었다. 그런 나를 전담 training 했던 사람이 바로 메리이다. 한 번을 웃지 않는 데다가 군더더기 없는 말로 실수하는 나를 면박주기 일수였다. 일하는 시간 내내 붙어 다니면서 지적에 지적을 거듭하는 그 친구가 너무 무섭기도 하고 밉기도 해서 일 나가기가 싫었던 때가 많았다. 한 달쯤 지났을 땐가, 손님들 말도 얼추 알아듣고 일도 빠릿빠릿하게 하는 내가 그때서야 마음에 들었는지 와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만다, 너 어떤 스타일 남자 좋아해?" "내 딸 사진 보여줄까?" "다운타운에 진짜 맛있는 초밥집을 알아, 다음에 같이 갈래?"

한참 지나고 왜 처음에는 그렇게 못되게 굴었냐고 메리에게 묻자 일하다가 얼마 못 있고 금방 나가는 사람들에게 굳이 잘해줄 필요도 없거니와 못하는 걸 못한다고 말해야 빨리 실력이 늘기 때문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필리피노이자 미혼녀였던 메리는 정부 지원금으로 대학도 가고 일터도 더 좋은 곳으로 옮겨 아직도 밴쿠버에서 잘 지내고 있다.


#라샤

머리부터 발끝까지 히잡을 두른 예쁜 얼굴의 라샤는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식당에는 절대 가기 싫다며 고개를 좌우로 젓던 라샤는 마음도 예쁘고 성격도 차분해 왠지 모르게 끌리던 친구였다. 항상 좋은 향기가 나서 향수를 좋아하냐고 물으니, 자기는 향수를 너무 좋아해 자기 전에 꼭 몸에 뿌리고 잔다고 했었다. 향수는 외출할 때 뿌리는 거 아니냐고 재차 물으니까 잠들기 전 샤워하고 좋아하는 향수를 몸에 뿌리고 침대에 누우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며 나에게도 추천했다. 그 이후로 나는 종종 자기 전에 라샤처럼 샤워 후 몸에 향수를 뿌리고 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내게 지리적으로나 심적으로 굉장히 먼 나라처럼 느껴졌는데, 이 친구 덕분에 그 나라 실정을 몇 가지 알 수 있었다. 한 번은 며칠간 학원에 나오지 않아 걱정을 했는데 알고 보니 라마단 기간이라 집에 있었다고 했다. 이 기간에는 해가 떠 있는 낮이면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물을 마셔서도 안된다. 그렇게 굶으면 배고프고 힘들지 않냐고 묻자 자기는 익숙하기도 하고 꼭 필요하다고 대답하는 그 애가 신기했었다. 또 한 번은 그 나라의 성적 불평등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는데, 여자는 운전면허를 딸 수도, 혼자 여행을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음식점 줄을 서는 것도 남자와 여자가 서는 줄이 다르다는 걸 듣고 놀라았다. 나중에 사우디 아라비아로 놀러 갈게 라고 하자 라샤는 "만다, 사우디는 아무나 오지 못해. 도로를 만들고 건물을 세우는 것처럼 정부와 함께 하는 사업을 하거나 사우디 아라비아 인에게 초대를 받은 사람만 들어올 수 있어."라고 하더니 "내가 널 초대할 테니까 그때 와"라고 장난기 어린 얼굴로 이야기했다.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다니엘, 루카스, 토마스(Daniel, Lucas, Tomas)

너무도 좋아하는 브라질의 친구들. 이 친구들 덕분에 브라질 남자들은 너무도 착하고 스윗(!)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스맛폰좀비를 사이에 두고 - 아야카와 나, 다니엘

#세미(Sammy)

대만 사람들이 한국인에게 안 좋은 인식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해 준 친구. 팀홀튼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였는데 어찌나 일을 야물게 하던지 입이 떡 벌어져 넋 놓고 그 친구 일하는 걸 바라보기 일수였다. 이 친구 역시 나에게 마음을 쉬히 안 열더니 나중에는 많이 친해져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 때면 선물과 카드를 보내고 있다.


#아야카(Ayaka), 샬론(Charlotte), 알바(Alba) 등

지금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친구들이다.

록키마운틴 가는 길 - 왼쪽부터 샬롯, 유리, 나, 모에


멋진 야경을 볼 때나 날씨 좋은 날 공원 벤치에 앉아 여유를 즐길 때면 왠지 모르게 밴쿠버에 다시 가고 싶단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가고 싶지 않기도 한데, 이제는 그곳에서 더 이상 이 친구들을 볼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보고 싶다 밴쿠버 친구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