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못 버틸 것 같아.”
일하는 시간대가 달라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던 한국인 동료 니나가 나와 대화를 나누다 대뜸 말했다.
나보다 한 달 정도 먼저 밴쿠버에 온 니나는 어학원을 다니지 않고 바로 일을 구했는데, 첫 일터는 조용한 카페였다고 한다. 손님도 적당히 없고(?) 여유 있는 카페였는데 문제는 손님이 없으니 일할 사람도 거의 필요하지 않아 니나가 받은 shift가 너무 적었다. 일한 시간이 적으니 급여도 적을 수밖에. 삼주 만에 그만두고 구한 직장이 지금 일하고 있는 팀홀튼인데, 이곳에선 이전에 일하던 곳보다 더 많이 일할 수 있어 먹고살 수 있을 만큼 돈은 벌지만, 너무 바쁜 데다가 다양한 나라에서 온 동료들을 대하는 게 어렵게 느껴져 스트레스를 너무 받는다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처음 벤쿠버에 왔을 땐 나름 백옥같이 고왔던 피부가 지금은 모두 뒤집어져 곰보가 됐다고 울상이다.
앞으로 잘할 거라며, 아직 얼마 안 있었으니 함께 견뎌 보자며 위로를 건넸지만 ‘누가 누굴 위로하나’ 하는 생각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얼마 전에도 일하던 중에 동료들 앞에서 눈물을 쏟았으니까 말이다.
처음 일을 시작하면 하루 이틀은 비디오를 보면서 트레이닝을 받는다. 손님을 대할 때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시나리오가 주어지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대답과 행동을 선택하는 일종의 롤플레잉 같은 비디오 트레이닝이다. 이 비디오 강의를 다 수강하면 트레이너에게 본격적으로 현장 트레이닝을 받는데 내 트레이너는 메리라는 필리핀에서 온 친구였다. 키는 나보다 작고 말랐지만 또렷한 눈매와 굳게 다문 입술은 야무진 인상을 주었고 그녀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무척이나 카리스마 있게 느껴졌다. 동료들과 가까워 보이진 않았지만 내 눈에는 적당히 거리 둘 줄 알고, 그래서 동료들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 같았다. 무엇보다 그녀를 찾는 단골손님들이 많았고 영어도 아주 잘해 가뜩이나 주눅이 든 나는 이 친구 앞에서 더욱 작게 느껴졌다.
처음으로 현장 트레이닝을 받던 날, 메리는 본인이 주문받는 걸 한 번 쓱 보여 주더니 직접 주문을 받아보라며 나더러 till 앞에 서라고 했다. 그녀의 주문에 나는 무작정 till에 섰다.
그야말로 실수투성이었다. 주문은 못 알아듣기 일쑤였고, 대충 알아들은 주문은 사이즈가 틀렸거나 설탕이나 크림 개수가 틀렸고, 도넛은 당연히 엉뚱한 게 나갔다. 내가 틀릴 때마다 메리는 올바르게 고쳐줬지만 그 도움에 끝에선 “Please listen.”이라며 한심하다는 듯이, 내가 일부러 안 듣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하곤 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매장의 피크 타임은 절정을 향해갔고, 나의 멘붕 상태도 정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마와 콧등에선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눈앞은 캄캄 정신은 멍하고 귀에선 윙하는 소리도 나는 것 같았다. 고작 50cm 거리를 두고 till 앞에서 주문을 하는 손님과 내 옆에 바싹 붙어 이번엔 또 뭘 틀릴까, 틀리기만 해 봐라 벼르고 있는 메리, 각자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고 샌드위치를 만드느라 바쁜 동료들,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과 매장 내 소음이 짬뽕이 되더니 결국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긴장을 했을까, 울 일이 아니었는데 왜 그랬지? 하는 마음과 동시에 잘 해내고자 애쓰는 그 당시의 내가 안쓰럽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리고 건네고 싶은 말, ‘애쓰지 마! 애쓰지 않아도 돼!”
하루 이틀 지났다고 실수가 금방 줄어든 건 아니었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는 제법 카페 직원답게 일할 수 있었다. 손님들의 주문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었고, 모르는 건 동료들에게 물어볼 나름의 여유도 생겼다. 나를 찾으며 안부를 묻는 손님도 생겼고, 오늘은 언제 오려나 기다려지는 손님도 생겼다.
그때의 나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다시 긴장하고 실수할까 두려워하고, 결국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지만, 말해주고 싶다. 서두르지 말라고.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자기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을 조금은 즐겨보라고 등을 토닥이며 그렇게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