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째 날
"흐음.."
오랜만에 호텔 방에서 아침을 맞이한 나는 다시 봐도 적응 안 되는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사진으로 봤을 땐 더 깔끔하고 새것 같았는데..'
그러다 화장실 문을 열어보고는 더욱 적응 안 되는 모습에 문득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게 세화든 서울이든.
어제 세화를 떠나 성산에 도착했다. 원래는 남원이나 표선처럼 제주도 남쪽으로 떠나고 싶었는데, 어째 비싸기만 하고 내 마음에 쏙 드는 숙소가 나타나질 않았다. 숙소를 찾지 못하자 흥미도 떨어져 충동적으로 다음 목적지를 성산으로 정해 버렸다. 성산은 머물렀던 세화에서 멀지 않기도 했고, 항상 가면 성산일출봉만 오르고 나왔던 곳이라 다른 재미난 것들이 있지 않을까 궁금한 곳이었다. 제주도에 오면 꼭 한 번 다시 가봐야지 마음먹었던 우도를 가기에도 편하고 말이다. 성산에서 맞이한 첫날 아침, 성산리를 한 번 쭉 돌아보기로 마음먹고 일찍부터 나올 채비를 했다. 이 적응 안 되는 호텔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 말이다.
어제 호텔에 짐을 놓고 나와 호텔 근처를 한 바퀴 돌 때 발견한 음식점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해물 순두부와 해물 파전을 먹었는데 역시나 혼자 먹기엔 양이 많아 남긴 해물 파전은 포장해서 에코백에 곱게 넣었다.
'저녁 메뉴는 해물파전이네.'
오늘은 올레길을 걸어볼 작정이었다. 호텔 위치가 올레길 1코스 중간(굳이 따지자면 끝나는 지점에 더 가깝다.)에 있어, 호텔에서부터 광치기 해변까지 1코스 후반부를 걷고, 괜찮으면 2코스도 걸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았다. 바람이 많이 불긴 했지만 햇볕이 따뜻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파란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올레길은 참 아름다웠다. 이전에 세화에서 평대리를 지나 월정리까지 걷던 20코스와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소리가 좋았고,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성산일출봉도 멋졌다. 길을 걷다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백년초는 왜 그렇게 제주도 특산물 초콜릿에 백년초가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지 짐작케 했다. 제주 4.3 사건 당시 양민들을 집단 학살했던 터에 설치된 표지석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새파란 바다와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이런 참혹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쓰여 발을 떼기가 어려웠다.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걷다 보니 그전과는 다른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혼자 걸으니 심심해'
'다시 돌아가다니 아쉽다'
'사계절을 다 겪어 보면 좋을 텐데, 못 가본 지역도 많고.'
'그렇지만 역시 난 도시가 좋아, 너무 지루하잖아'
'사람들이랑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려. 단내 난단 말이야.'
회사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냐고 스스로 물어보는 질문엔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깨닫곤 '이 정도 놀았으면 됐지, 가서 돈이나 벌자'하고 스스로를 타이르기도 했다.
오조리 마을회관을 지나 대수산봉까지 걷다가 점점 더 세지는 바람에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씻고 나와 포장해 온 해물파전을 한 입 물었는데 차갑게 식어버려 맛이 없었다. 세화에서 챙겨 왔던 나무젓가락을 내려놓고 차마 버릴 수 없어 챙겨 온 김을 하나 깠다. 안 버리면 언젠가는 써먹는다는 엄마 말이 맞았다. 짭조름한 김을 입에 넣고 음미하며 생각했다. '김 맛 참 씁쓸하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