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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Feb 05. 2023

루틴, 나를 지키는 돌봄

에세이 앤솔러지 《작가의 루틴 : 소설 쓰는 하루 & 시 쓰는 하루》

다시, 일에 관해 말하려고 한다. 글 쓰는 일을 하는 나는 글쓰기에 유리한 형식으로 살아가려고 애쓴다. 행동과 환경을 자주 조정한다. 가능했다면 날씨나 바람까지 바꿨을지도 모른다. 내 일을 잘하고 싶어서다. 오래, 하고 싶어서다. 더해, 나의 무의식 안에는 글쓰기가 아닌 다른 노력으로 더 나은 글을 쓰겠다는 황당한 의지도 숨어있는 듯하다. 책상을 정리한다고 좋은 글이 나올 리가 없는데 말이다. 아무튼 글쓰기를 위한 최적의 기분과 환경을 구성하는 데 꽤 많은 힘을 쏟는다. 이러한 태도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무언가에 몰두하기 위해 습관화한 생활(행동) 양식’ 정도면 될까. 이런 설명은 길고 지루하니 그냥 두 글자로 말하자. ‘루틴 Routine’.


나의 루틴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이번엔 작가들의 루틴을 담은 두 권의 책 《작가의 루틴 : 소설 쓰는 하루》*와 《작가의 루틴 : 시 쓰는 하루》**(이상 앤드, 2023)를 만났다. 예상대로 작가들의 루틴과 그것을 표현한 형식은 제각각이었다. 다만 루틴을 구성하는 주제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업 장소, 작업 시간, 운동, 먹을 것, 마실 것, 집안일, 수면 그리고 산책은 거의 매번 등장했다. 드물게 음악과 반려동물이 포함돼 있으며, 그보다 자주 무라카미 하루키의 생활 태도와 문장이 인용되었다. 이 중 내가 눈을 기울이며 읽은 루틴의 주제어는 산책이다.

      

이규리 시인은 산책의 의미를 이렇게 짐작했다. “나는 때가 많이 묻었으므로, 췌언이 많았으므로, 솔직하지 못했으므로, 아는 체했으므로, 묵은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 산책 아니었을까.” 이번엔 박솔뫼 소설가의 글. “걷다 보면 많은 일들이 괜찮아진다.” 두 작가의 글을 공감하며 읽다 보니 이런 생각도 든다. 작가에게 ‘걷기’는 ‘쓰기’의 연장이지 않을까. 내게도 산책은 중요한 행위다. 걸음으로 일과 생활을 나누거나 잇는다. 그러지 않으면 무질서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라는 것이 그렇다. “시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인정한 순간부터 시는 점점 나의 생활이 되어 갔다”라는 서윤후 시인의 글대로 일과 생활이 뒤섞여 있다.

      

뒤섞인 일상 안에서 작가는, 이따금 작가가 된다. “소설가를 포함한 작가는 직업이 아니라 현존의 어떤 상태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조해진 소설가의 문장이다. ‘작가라는 상태’는 언제 찾아올까. 알 수 없다. 항상 준비해야 한다. 언제든 그 상태를 맞을 준비, 작가가 될 준비를 말이다. 이러한 연유로 작가의 모든 루틴은 ‘글쓰기를 위한 최적의 기분과 환경 만들기’에 속해 있다. 밥을 먹거나 잠을 잘 때도 글쓰기를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정도면 ‘자기 돌봄’과도 다르지 않으리라.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그이(나)가 욕망하는 일(글쓰기)을 하도록 돌보는 것이므로. 작가가 아니라도 그렇다. 루틴은 내가 나를 돌보는 일이다.

     

기년 전 한 작가의 인터뷰를 보다가 “글 쓰는 동안 나는 내 눈치를 가장 많이 본다”라는 답변을 읽은 적 있다. 누구의 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용은 기억한다.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치는 보는 것일 뿐 정답을 맞히는 일은 아니다. 대상이 나일 때도 그렇다. 이따금 지치거나 다친 상태에서도 ‘지속’에만 매달릴 때가 있다. 내가 보내오는 신호를 내가 듣지 못하고 억지를 부리는 거다. 조예은 소설가에게도 무기력이 찾아온 순간이 있었다. 그는 경로 이탈로 극복했다. “루틴을 피해 도망친 여행지에서 그토록 원하던 새 루틴을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많은 일들이 그렇다. (…) 도망친 곳에서 새로운 동력을 얻기도 한다.” 떠나서, 돌아온 것이다.

      

두 권의 책, 열네 명의 저자 중 한 사람의 위기만 옮겨왔지만, 모두가 루틴 지키기. 즉, 자기 돌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세상에 쉬운 돌봄은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으나 이 고백이 반갑게 느껴진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므로. 지속을 위한 절실하고 성실한 태도. 그걸 지켜볼 때마다 의욕이 생기는 건 우리의 욕망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욕망이 같다고 해서 루틴까지 따라 할 필요는 없겠다. 루틴에 정답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을 지속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무엇이든 루틴이 될 수 있다. 김중혁 소설가의 이 문장도 그렇다. “그냥 내키는 대로 사세요.” 농담이 아니다. 내 뜻에 따라야 나를 잃지 않을 테니까. 루틴은, 나를 지키는 돌봄이다.


                    


*《작가의 루틴 : 소설 쓰는 하루》(김중혁, 박솔뫼, 범유진, 조예은, 조해진, 천선란, 최진영 저, 앤드 펴냄, 2023)

**《작가의 루틴 : 시 쓰는 하루》(김승일, 서윤후, 양안다, 이규리, 이현호, 정현우, 최지은 저, 앤드 펴냄, 2023) 




(2023. 02. 03.)


(@dltoqur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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