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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Feb 17. 2023

새이고 심장이며 바다인 곳에서

한정원 시극 《사랑하는 소년이 얼음 밑에 살아서》

지난 달인가. TV를 보다가 당황하고 말았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커다란 화면 안에서 등장한 그는 심지어 말을 했다. 남은 이들에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제작진은 이를 ‘디지털 휴먼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가상 인간이다. 예상 못 한 재회에 낯설어하던 출연자들은 곧 몰입하기 시작했다. 화면 너머로 생전에 전하지 못한 말을 건넸다. 돌아온 대답은 화면 속 인물이 기술로 재현한 존재임을 잊게 할 만큼 구체적이었다. 모두 눈물을 흘렸다. 삶과 죽음 간의 기묘한 소통을 보다가 나도 울고 말았다. 헤어짐을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탓인지, 아니, 누구라도 그 광경을 봤다면 울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디지털 휴먼’은 연신 “잘 지내고 있다”라며 웃었다. 마치 당신은 모르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듯이. 그래,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다. 정말로 잘 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작별 앞에서 너무 크게 슬퍼한 우리 자신이 억울하게 느껴질 만큼, 떠난 이들의 세상은 이곳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남은 마음이 잠시 편해진다. 다만 몰려오는 상실의 기분까지는 어쩌지 못 하리라. 다시는 함께 할 수 없음. 남은 자와 떠난 자가 공유하는 유일한 그 진실 때문이겠다. 하릴없이 우리는 의지만으로는 이루지 못할 꿈을 꾼다. 꿈에서라도 만나기를. 서로가 사는 곳이 어디든, 꿈이라면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시간의흐름 시인선의 첫 시집인 한정원 시인의 《사랑하는 소년이 얼음 밑에 살아서》(2023)도 비슷한 소망에서 출발한 시집인 것 같았다. 다음 대목에서 나는 그렇게 짐작했다. “가장 아름다운 꿈은, / 그 애와 함께 있는 꿈이에요.”(Scene #25, 102쪽) 간절하고도 아름다운 이 꿈의 기원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시인의 소셜미디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래전 시인은, 바다가 소녀 앞에서 소년을 앗아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사고였다. 이후 시인이 겪은 시간은 그의 전작(산문집)에도 담겨 있다. “내상이 있었는지, 그 후로 길을 걷다가도 목덜미로 파도가 덮치는 환각 탓에 돌연 멈춰서야 했다.”(《시와 산책》, ⟨바다에서 바다까지⟩, 78쪽)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시인은 소년과 소녀를 잊지 못했다. 해서, 스물여덟 개의 막(幕)으로 구성한 시극(詩劇)으로 그들을 소환했다. 시를 쓰기 위해 데려온 게 아니라, 잊히지 못한 그들이 시로 돌아온 것이리라. 만날 수 없는 소년과 소녀를 만나게 한 시극은 현실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 소년과 소녀가 만나 꿈처럼 대화한다. 이 대화는 단선적인 평서문이나 독백 같은 운문과 달리 상연처럼 읽힌다.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사이 파도처럼 스미는 목소리. 소년과 소녀는 바람과 곰과 새 찾는 남자와 귀신과 전당포 노파와 기관사의 목소리를 만난다. 재회는 짧고 작별은 느닷없다. ‘얼음의 입구’ 앞에서 소녀는, 소년의 손을 놓친다.

     

마침내 두 번째 작별. 등장인물과 관객(독자)이 헤어질 시간. 에필로그에서 조명은 세 번 꺼진다. 첫 암전 이후 조명이 켜지면 “소녀 혼자 서서 웃고 있다.” 다시 암전. 조명이 켜지자 “소년 혼자 서서 웃고 있다.” 마지막 암전과 함께 시극은 막을 내린다. 나는 비로소 미뤄둔 무언가를 끝낸 기분이 들었다. 예고 없는 헤어짐은 작별 인사가 없다. 그런데 하지 못한 그것을 세 번의 암전을 통해 체험했기 때문이리라. 이제 소년과 소녀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이가 아니라 나와 작별한 존재가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부박한 해석 다음에 찾아오는 공허. 요컨대 내가 현실에서 겪은 작별. 떠올리니, 마음이 다시 무참해진다.

     

“내일은 모두 잊을 거야, / 하지만 오늘만 계속 이어지는구나.”(Scene #24, 99쪽)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언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 끝없이 이어지는 얼음 길. 그 아래 사는 이들은 내가 만나지 못할, 언 눈물에 갇힌 존재들. “소녀 바다는 뭐든지 숨길 수 있으니까. / 소년 아주 큰 고래도. / 소녀 아주 작은 이름도 / 소년 잃어버린 것이 모두 바다로 간다면,”(Scene #7, 40~41쪽) 그리하여 새이고 심장이며 바다인 그곳에서, 나를 떠난 존재가 잘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믿어 본다. 부재를 ‘없음’이 아니라 ‘가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 있음’으로 함부로 치환한다. 그렇게, 먼저 떠난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

      

시인은 평생 읽은 시를 담은 산문집에서 “책을 덮고 나면, 아름다운 시들만이 발자국처럼 남기를 바란다. 앞으로는 나를 뺀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고 싶다”라고 밝혔지만, 이제 그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 가득 남은 분이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중 하나이다. 시인의 명랑하고 단정한 슬픔도, 한순간도 잡히지 않는, 흰 눈처럼 자유롭고 아름다우며 깨끗한 문장도 마음 한편에 녹지 않고 남아 있다. 세상에는 그저 내 안에 있다는 감각만으로도 위안을 주는 것이 있는데, 시인의 시와 문장도 내게 그렇다. 그래서 다행이다. 한바탕 꿈으로라도 재회를 그린 이가 있어서. 사랑하는 시인이 어딘 가에 살아서.


          

(2023. 02. 17.)


(@dltoqur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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