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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Apr 25. 2023

등뼈를 상상한다는 것

안희연 산문집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시인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 시인은 정확한 목소리로 말한다. “사람을 만나면 그가 누구든 살아있음이 감격스럽고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이어 자신의 버릇을 소개한다. “그 사람이 혼자 있을 때, 방에서 등 돌리고 앉아 있을 때의 등뼈를 상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자 앞에 앉은 인터뷰어가 울고 만다. 시인은 맑은 눈을 반짝이며 왜 우느냐며 웃는다. 울린 사람, 웃는 사람은 안희연 시인이다. 그가 쓴 책도 이 장면과 닮아 있었다. 읽는 사람을 웃기고, 울리며, 슬픔을 탕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산문집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난다, 2023)의 이야기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안희연 시인이 ‘먹고, 사고, 사랑하는’ 것들을 주제로 쓴 산문을 엮은 책이다. 1부에는 귤, 보늬밤조림, (반잔의 뱅쇼와) 시나몬, 논알코올맥주, 유가 사탕, 바나나튀김, 케이크, 굴 등의 먹거리가. 2부에는 부엉이 촛대, 칼라디움, 엽서, 시어서커 잠옷, 헬렌 셰르브베크화집, 락스, 하모니카, 인공눈물 등의 물건이. 그리고 3부에서는 친구와 엄마와 집과 시와 할머니를 감싼 사랑이 적혀 있다. 분류와 관계없이 모든 글이 ‘당신’을 향한 고백으로도 읽힌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는데, 책을 덮으며 수많은 ‘당신’을 만나고 온 기분이 든 것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시인을 통과한 대상은, 그 대상이 사람이든 아니든, 생명이 있든 없든 줏대 있어 보였다. 저마다 역사가 있고 기억이 존재하며 감정을 가진 주체처럼 느껴진 것이다. ‘증거 문장’ 몇 개를 함께 읽어보자. 아직 읽지 못한 분들을 위해 발견의 기쁨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그러니까 맥락은 빼고서.

     

 “귤은 숨기기 좋은 얼굴을 하고 있잖아.”(15쪽): 이 문장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귤의 얼굴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이 문장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말았다. 한 가지 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집안 곳곳에서 귤이 발견되는 이유. 그건 오직 귤의 얼굴 탓이었다.

     

 “달기만 하거나 쓰기만 한 삶은 없어. 달고도 쓴 삶이 있을 뿐이지.”(28쪽): 화자는 와인이다. 와인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세상에 온 걸까. 그래서 그토록 유혹적인 빛깔과 향을 가진 것인가. 그것을 모르면 삶이 더 애달파질 우리를 위해.    

 

 “하트 초 꽂았어. 너 하트 살이야.”(58쪽): 하트나 알파벳(주로 HBD) 모양의 초를 사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의 나이가 많아지고부터, 아니 그것을 실감한 순간부터였으리라. 숫자가 아닌 초들은 배려하듯, 두 가지 부정을 사전에 차단해 준다. 하나 “당신이 이토록 나이가 많을 리 없어.” 둘 “내가 이렇게 오래된 사람일 리 없어.”     


 시인의 표현을 가져 와 서툰 사견을 보태다가 알게 된 것이 있다. 시인이란, 한 대상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그 대상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는 존재일 수 있다는 것. 새롭지 않은 관점이겠으나 ‘등뼈를 상상하는 버릇’이라는 제목의 꼭지를 읽고서 새삼 확신하고 말았다. 거기엔 ‘명랑’이 등장한다. ‘명랑’은 시인의 시 속 모델이 된 적 있는, 일상과 문학을 나누는 시인의 친구이다. 그런데 한 달째 그에게서 연락이 없단다. 아마도 혼자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시인은 멀리서 그 마음을 헤아리며 글을 쓴다. 어떤 글이냐 하면 “너를 일으키려고 쓰는 글”(137쪽)이다.

     


 ‘명랑’은 자기 이야기를 자주 하지 않고, 힘듦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이 ‘명랑’의 방식이란다. 그런 그를 향한 시인의 조심스럽고도 간절한 ‘상상의 방문’을 읽으며 나는 부러웠고 고마웠다. 마치 ‘명랑’이라도 된 듯이. 그래, 내가 ‘명랑’이라면. 가정하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 저 사람은 나를 걱정하느라 기어이 내가 되고 마는구나, 하나 나조차 볼 수 없는 나의 등뼈마저 보는구나, 나의 슬픔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건 당신뿐이구나. 그러므로 이렇게 믿을 수밖에. 당신의 등뼈를 상상한다는 것은 소리 없이 당신의 안부를 묻는 것이며, 그보다 소란하게 사랑하는 소리는 없을 거라고.


 가만히 당신의 등뼈를 상상해 본다. 다가가기보다는 멀찍이 앉고 싶다. 옆에서 책을 읽어도 좋겠다. 당신이 돌아보고 “무슨 책이야?” 물으면, 내가 아는 당신이라면 아낄 만한 책이라고 대답하며 이 책을 건네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다만 이 책이 가진 “이 엄청남을 묘사할 나의 언어가 빈약하다는 게 통탄스러울 뿐.”(147쪽) 아쉬워도 끝은 내야 한다. 나의 일은 여기까지이다. 마지막 할 일은 시인의 말을 빌려 마침표를 찍는 것. “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 그러니 이제 가세요, 당신의 기억으로. / 그곳에서 슬픔을 탕진할 때까지 머무세요.”(에필로그, 201쪽)


       

(2023. 04. 25.)

(@dltoqur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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