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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Jun 22. 2023

인생의 버팀목이 오는 순간

존 윌리엄스 소설 《스토너》

 8년 전 출간된 소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좋은 책은 시대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재발견되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운명을 타고난 듯하다. 1965년 발표 후 50년 만에야 ‘읽히는 소설’이 된 《스토너》(Stoner, 존 윌리엄스 저)*의 이야기이다. 국내에 초판본이 나온 것도 3년 전이고, 특별히 새로운 소식도 없는데 이 소설은 왜 재소환된 것일까. 한 온라인 방송에서 언급되었기 때문이란다. 이유가 무엇이든 반갑다. 얼마 전 이 소설을 다시 읽다가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을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내가 겪은, 오래된 질문 하나를 건네 보려고 이 글을 쓴다.


 《스토너》는 한 인간의 생애를 다룬 소설이다. 이렇게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까닭은 쉽게 요약할 수 없는 작품이라서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서사를 옮겨 쓸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평범과 비범, 인생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 최후의 허무, 문학의 아름다움과 그것에 빠진 인간의 욕망과 기쁨과 고통 등도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한 주제로 쓰인 글은 충분하며 그보다 특별한 의견을 제시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스토너’가 겪은 ‘그 순간’에 주목해 보자. 어떤 순간인가. 스토너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들으며(발화자는 ‘아처 슬론’ 교수이다) 문학이라는 세계에 운명처럼 빠져드는 순간을 말한다.


 나는 그 순간을 내 멋대로 ‘스토너적 순간’이라고 부른다. 마음대로 명명한 김에 한 가지 더. 함의를 확장해 본다. 요컨대 ‘나’의 인생을 지탱할 무언가, 모든 것을 잃어도 지키고 싶은 한 가지, 존재의 의미, 평생의 지지대 등 거창한 표현을 가져와도 무방한. 이 표현 전부에 해당하거나 일부라 해도 당사자의 인생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그런 대상이 다가오는 순간을 나는 ‘스토너적 순간’이라고 믿는다. 당연히 그 대상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한 사람의 생에 버팀목이 된다면 무엇이든 해당하리라. 이쯤에서 건네는 질문. “선생님께서 겪은 ‘스토너적 순간’은 언제였으며 그 대상은 무엇이었습니까?”     


 질문을 드렸으나 지면으로는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흥미로운 논쟁 중 하나. 스토너의 인생은 과연 행복했는가 아니면 불행했는가. 한 인간의 생을 행불행으로 판단하는 건 불가능하다. 누구나 알고 있듯 인생은 그보다 복잡하기 때문이다. 간신히 말해 본다면 나는 스토너의 생이 불행보다는 행복에 더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반론이 있을 것이다. 주로 결혼 생활과 사내(학교) 정치의 실패를 근거로 제시할 텐데, 내 대답은 이러하다. 사는 동안 자기 내면을 깊이 만나왔다는 점에서, 인간으로 남을 수 없는 위기를 겪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가 불행하지만은 않았다고 여긴다.


 다만 스토너에 자신을 투영하여 연민하다가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인생작’이라고 말하는 분들의 마음을 존중한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하므로 이렇게 짐작해 본다. ‘참는 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동질감이라고. 스토너는 인생에서 많은 것을 감내했고, 잠시간 욕망을 부리다가도 더 중요한 것을 잃게 될 것 같으면 제자리로 돌아왔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우리의 인생도 그럴 테니까. 참지 않는 인생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인생이 무언가를 참고 견디는 여정이라면,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에게는 ‘스토너적 순간’이 더욱 절실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인생의 버팀목이 오는 순간을 겪지 않고는. 그러니까 자기 존재에 대한 의문을 지워줄 ‘무언가’를 만나지 못하면 인생은 하염없이 길어지고 외로워질 테니까. 물론 버팀목을 만나도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인간은 변덕스럽고 거의 매일 흔들린다. 자기를 지탱하는 대상마저 의심하고 외면한다. 나도 그렇다. 흔들릴 때마다 스스로 이 말을 들려준다. 전쟁이 발발하자 입대와 잔류 사이에서 고민하던 스토너에게 슬론이 건넨 말.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왜 이 말인가. 버팀목을 버팀목으로 남게 해주는 말이기 때문이리라.



(2023. 06. 22.)

(@dltoqur__)

 



*《스토너》(Stoner, 김승욱 역, 알에이치코리아, 2020) ‘초판본’ 기준으로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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