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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Aug 23. 2023

우리가 보낸 시절

영화 《남매의 여름밤》

기억과 추억은 다른가. 일상에서의 쓰임은 다르나 사전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두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구별해 보기 위해서는 각자의 견해를 들어보는 수밖에 없겠다. 내가 생각하기론 이렇다. 행위로써 기억은 머릿속에 저장된 정보를 떠올리는 일이며, 추억은 그것에 포함된 정서를 재경험하는 일이리라. 부박한 이 결론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한때를 말할 때 추억이라는 단어를 주로 쓴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그런데 타인의 한때, 그러니까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시절을 보면서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가. 윤단비 감독의 영화 《남매의 여름밤》(2020)을 보다가 떠오른 의문이다.

     

영화는 여름방학 중인 ‘옥주’(최정운)·‘동주’(박승준) 남매가 ‘아빠’(양흥주)와 함께 ‘할아버지’(김상동) 집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모’(박현영)까지 합류한 그들은 다섯이 된다.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보던 나는 애틋해지고 말았다. 마치 우리가 보낸 시절을 돌아보기라도 한 듯이. 자전거, 계단, 모자, 잠결, 부고, 빈 의자 등을 마주할 적에는 떠오르는 순간이 많았다. 그들의 여름밤이 타인이 보낸 시간 같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겪은 일이 아니었으므로 추억이라고 말하기엔 어렵다. 다만 흐리고 아름다운 꿈을 꾼 것 같았다. 꿈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에도 세 번 나온다.

     

먼저, 고모의 꿈. 지친 여름밤 옥주는 고모에게 묻는다. “아직도 할머니 보고 싶어?” 고모가 답한다. “맨날 보고 싶지.” 그러면서 덧붙인다. “내가 갓난아이일 때 우리 엄마가 나를 안고서 횡단보도로 막 뛰어간다. 그게 진짜 생생하거든. 그래서 그게 어렸을 때 기억인 줄 알았어. 근데 생각해 봐라. 포대기에 싸인 내가 보이는 거 보면, 그건 기억이 아니라 꿈인 거잖아.” 옥주가 의아한 듯 말한다. “꿈에 계속 할머니 나오는 거 신기하다.” 하나 고모는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엄마 보고 싶으니까 꿈에 나오는 거겠지. 너는? 너는 안 그래?” 이어진 옥주의 단호한 대답. “난 꿈 안 꿔.”

     

그러나 옥주도 꿈을 꾼다.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엄마, 아빠, 고모, 동생 그리고 자신이 함께 밥을 먹는다. 고모의 말대로 꿈의 주인(옥주)이 보였으므로 이것은 명백한 꿈이다. 더구나 그곳에 엄마가 있다. 구체적인 사정은 나오지 않지만, 엄마를 만나고 온 동생과 다툴 정도로 옥주는 엄마를 미워한다. 만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필요한 건 사실이었으리라. 평소에도 그랬고,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금은 더욱 그렇다. 누구든 마음이 위태로운 순간에는 누군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상황을 바꿔주지는 못해도 그저 함께하고 싶은 누군가. 스스로 아무리 부정한대도 옥주에게 엄마는, 그런 존재였으리라.

     

우리가 가족을 말할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한솥밥을 먹는다.’ 가족의 다른 말, ‘식구’의 의미는 이러하다.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영화 속 현실에서도 옥주의 가족은 계속, 밥을 먹는다. 그러므로 옥주에게 밥은, 가족의 은유일 듯하다. 꿈에서 그랬듯 장례를 마치고 온 후에도 옥주는 가족과 밥을 먹는다. 할아버지 없는 할아버지 집에서 밥을 먹던 옥주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옥주의 시선은 의자에 닿아 있었다. 할아버지가 앉아 계시던. 지금은 텅 빈 의자. 곁에 있던 누군가를 보내고 나면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남는다는 사실을, 옥주는 눈으로 확인한 참이다.


떠난 이가 남기는 것은 빈자리뿐인가. 기억이 남는다. 추억이 남는다. 기억과 추억이 머릿속에 저장된 정보라면, 꿈은 무의식의 발현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꿈에는 때로 나도 모르던 소망이 재생된다. 아빠의 꿈을 보자. 할아버지가 어린 아빠를 깨운다. 지각을 피하고자 서둘러 집을 나선 아빠는 당황한다. 아침이 아닌 밤이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잊고 살던 할아버지의 장난을 꿈에서 만났다. 우리가 보낸 사람은 돌아올 수 없지만, 우리가 보낸 시절은 돌아올 수 있나 보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영화를 보다가도, 청소를 하다가도 돌아온다. 그렇게 시절은 오래된 집처럼 우리의 오늘을 함께, 살아간다. 문득.


(2023. 08. 23.)

(@dltoqur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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