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저 Jan 15. 2019

인사는 왜 늘 아랫사람이 먼저 해야 하나요

고등학생 때 일이다. 시력이 2.0이었는데 갑자기 눈이 나빠져 칠판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 거야!”

나는 아빠를 데리고 위풍당당하게 안경 가게에 입성했다. 그리고 진열대에서 꽤 비싼 안경테를 집어 들었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가장의 딸이었지만 부모에게 뭔가 당당히 요구해도 괜찮은 (줄 착각하는) 고3 수험생이었다. 거 참 잘 골랐다는 안경점 주인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거울 앞에 섰다. 도수가 들어간 안경을 쓰고 나를 선명하게 마주한 순간.     

“으악, 이게 나야?”

내가 마주한 열아홉 살 내 모습은 눈 밑에 그늘이 지고 일명 돼지털로 불리는 반곱슬이 보기 싫게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 볼에는 주근깨까지 투두두둑 퍼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형적인 수험생이었고, 30대인 지금 기준으론 목련꽃처럼 풋풋해서 부러운 얼굴이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때는 낮은 시력 때문에 내 모습을 자체적으로 뽀얗게 필터링 해온 터라 대단히 실망했다. 노랗고 은은한 백열등 켜고 살다가 쨍한 형광등 아래 거울에 섰을 때의 충격이었다.

철없는 나는 그렇게 비싼 안경 하나를 장만하게 됐지만 대학에 가고 나서 안경은 안경집에서 고이 잠드는 운명을 맞았다. 시력도 조금 회복됐는지 안경 없이 살아도 불편한 일은 없었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진.

     


신입사원이 눈이 좋아야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멀리서 보이는 선배들을 알아차리고 다가오는 타이밍에 맞춰 먼저 인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눈치란 곧 신입사원의 센스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였다.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건 회사 건물에 들어서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3미터나 될까 하는 내 빈약한 가시권에 진입하기 전부터 그들은 내가 인사를 하나 안 하나 주시하고 있었고,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채 사라지는 이들도 허다했다는 거다. 그렇다고 안경 쓰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인사 기계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기이하게도 하나같이 그들은 절대 대놓고 지적하지는 않았다(높은 사람들이라 그런가?). 대신 몇 다리를 지나 끝끝내 내 귀에까지 도달하게 만들었다. ‘요새 너에 대한 평가가 이렇다더라’ 하는 식으로. 그 말을 듣는 나는 부아가 치밀었다.    


"회사 안에서는 다 너보다 선배니까 무조건 인사해.”

“선배들이 먼저 하면 안 돼요?”

“… 어?”

“인사는 꼭 아랫사람이 먼저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선배들이 보기에 도무지 맘에 안 드는 것 투성이었다. 선배들은 내가 신입사원인데도 각이 전혀 안 잡혔다고 뒤에서 손가락질했다.

“각이 뭔데요?”

학교 다닐 때 도형의 예각, 둔각은 억지로라도 배워서 암기했는데 어떻게 해야 각이 잡히는지는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곧 어렴풋이 알게 됐다. 그 말이 나올 때마다 내 옆의 신입사원 남자 동기들이 모범답안처럼 온몸의 각이란 각을 더 잡아댔기 때문이다.   

내가 화장을 안 하는 것에도 선배들은 혀를 끌끌 찼다.  대학 1학년 첫 수업 때였다. 한 교수가 강의 시간에 여학생들에게 아침에 화장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다.

“30분이요! 한 시간이요!”

그러자 교수는 말했다.

“너희들의 30분, 한 시간이 평생으로 보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냐.

그동안 남자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살라는 취지의 발언이었을지 몰라도 나는 ‘그래? 그럼 화장 안 하지, 뭐’라고 속으로 다짐하며 맨얼굴로 대학 생활을 마쳤다.

요새 말로 ‘얼굴평가’가 만연하고 외모를 업무성과와 직결시키기도 하는 방송가에서 맨 얼굴로 뻔뻔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유독 그런 방면에서 무딘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30대로 접어들면서는 엄마가 왜 그렇게 집 앞 슈퍼에 갈 때마저도 루주를 바르고 나갔는지 이해하게 됐고, 이제는 자외선 차단 기능 비비크림을 바르고 주기적으로 눈썹 결을 다듬기도 한다. 그럼에도 화장은 대체로 내게 어쩔 수 없이 하는 귀찮은 행위다. 가끔 뉴스 출연으로 회사 분장실에서 메이크업을 받으면 신기하기도 하고 외모가 조금 나아져 기분이 좋긴 해도 평소에도 그렇게 다니라고 하면 도저히 못 할 짓이다.

     

나는 그렇게 10년을 버텼다. 입사 10년 차가 되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주변으로 밀물처럼 후배들이 들어왔다. 연차가 쌓이면서 이제는 평가를 받기보다 후배를 평가하는 위치로 조금씩 옮겨갔다.

예전의 나처럼 좋고 싫은 게 얼굴에 투명하게 드러나는 후배도, 예외 없이 모든 업무를 자존심과 연결 짓느라 안에서 못 삭이고 앞에서 다 뱉어내는 후배도 있다. 멀리서부터 후다닥 다가와 곰살맞게 구는 후배도, 날마다 SNS에 화장실 셀카를 올리며 외모와 몸매에 집착하는 후배도 있다. 빠릿빠릿한 후배도, 뭘 시켜도 일단은 빼고 보는 후배도 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 역시도 선배가 된 후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는 옆 부서 후배에게 내심 박한 평가를 내리는 옹졸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회사에서 처음 만나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단언하는 식의 평가는 하지 말자.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날 향한 평가들에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꽤 오래도록 아파했기 때문이다. 넌 참 제멋대로다, 당돌하다, 인사를 안 한다, 사차원이다, 고집이 있다 등등…. 쇼윈도에서 물건 하나 집어보고 쉽게 내려놓는 것처럼 나란 사람에게 무심하게 던진 말들은 끝끝내 상처로 남았다.



사람의 진가는 오래 한 공간에서 지내다 보면 결국엔 드러나게 된다. 태도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책임감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사람을 대충 보면 어찌 아나. 쉽게 판단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매거진은 연재가 끝났어요!
브런치 구독을 부탁드려요~  :D 》

해당 글이 포함된 에세이는 《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전 03화 신부도 앞에서 하객 맞는 게 어때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