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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저 Jan 29. 2019

우리는 비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백수로 산 지 9개월. 4학년이 돼서야 저널리스트가 되겠다는 늦바람이 든 탓에 남들보다 한참 뒤처져 있었다. 여기에 4학기 연속으로 등록금을 대출받아 천만 원 넘는 빚까지.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이미 발 하나가 걸쳐 있는 낭떠러지 아래로 뚝 떨어질 것 같은 심정이었다.

     

어렵사리 들어간 면접장에서는 언론사라고 하기에는 식상한 질문들만 난무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봤는데 너무 멀어서 구조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래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달려갈 건가, 아니면 촬영을 할 건가?’

부모가 연루된 대형 비리 사건을 단독 제보로 알게 됐는데 보도할 건가?’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면 뭘 할 건가?’ 등등.

면접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에잇, 면접관들이 우리 머리 위에서 놀면 놀았지 그렇게 뻔한 질문을 하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원래 식상함이 뒤섞여 악취를 풍기는 공간이란 걸 스물다섯 살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면접장이야말로 구태의연한 질문들이 총집결된 공간이었다.

나는 인간의 도리를 지켜 생명부터 구하러 가겠다고 답했고(면접관들은 곧 하품이라도 할 기세였다), 자식이 부모님 쇠고랑 채우는 기사를 쓸 순 없으니 동료에게 제보를 토스하겠다고 하고(배구선수도 아닌데), 로또 당첨금은 야금야금 쓰겠다는 식으로 하나마나한 답변을 내놓았다. 더 이상 식상해지면 곤란할 것 같은 세상에 나까지 식상함을 한 움큼 더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한 면접관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네는 온건해 보이는군.”이라고 했는데 쓰디쓴 탈락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너에겐 흥미 없어.”란 의미였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도 채용공고가 뜨는 대로 언론사 시험을 보다 보니 요령이 조금 생겼는지 용케 한 방송사 합숙면접까지 올라갔다. 말하자면 백수가 쓸모 있는 인간으로 공인받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었다. 채용전형은 총 4단계로 한 단계씩 올라갈수록 압박 강도가 훨씬 높아졌다. “자네, 주량이 어떻게 되나.”라고 물으면 첫 번째 면접자가 소주 두 병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머지 면접자들은 최소 두 병 반 정도는 된다고 해야 감점을 안 당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주량의 사전 정의는 마시고 견뎌낼 만한 정도의 술의 양을 말한다. 견딘다는 건 시련이나 고통을 참아낸다는 뜻. 그렇다면 결국 주량은 정신력에 달렸다는 의미일까? 적어도 그때의 나에게는 두 병 반이 내 정신력을 의미했다. 밥벌이하는 사람 구실을 해보고 싶은 간절함과 동의어기도 했다. 술도 마셨겠다, 조금은 긴장이 느슨해진 틈을 비집고 회심의 기습 질문이 훅 들어왔다.

이렇게 애쓰고 뽑아놨는데 경력만 쌓고 이직하는 거 아닌가?”

다들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면접자들은 앞다퉈 이곳이야말로 기자 정신이 꽃필 수 있는 최고의 회사라고 답했다. 누군가는 뉴스 포지셔닝(있어 보이는 단어 선택이다)이 가장 공정하다고 말했고, 누구는 언론인을 꿈꾸며 처음부터 목표로 둔 회사라고 했다. 마지막 내 차례. 입술이 바짝 마른다. 답변 타이밍을 놓쳐 말문이 막히려는 찰나, 조바심 난 입이 머리보다 먼저 움직였다.

     

입사하고 나면 제가 회사를 평가하는 게 맞지 않나요?”    

     

지나고 나서 보면 아주 사소한 행동, 툭 내뱉은 말 한마디, 대충 내린 선택 따위에 인생 항로가 크게 휘어져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다. 야구에서 투수의 공 하나로 경기 흐름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뒤바뀌는 것처럼.

내가 그랬다. 미처 준비하지 않았던 저 당돌한 말이 언론인으로서의 길을 열어주었다.

나는 말했다. 합격하면 지금 당신들이 날 평가하고 있는 만큼 아주 꼼꼼하게 회사를 평가하겠다고. 과연 내가 있을 만한 회사인지 아닌지.

말을 마친 순간 면접관들의 표정이 쌔-하게 바뀌었던 것 같다. 그날 밤, 합숙소에 돌아가서는 이직 확률이 높은 면접자로 낙인찍혔다는 낙방의 기운이 엄습해서 잠 못 이룬 채 머리를 쥐어뜯어야 했다.

     

하지만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백하건대 나는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그해 단 한 명의 신입기자로 합격했다. 보도국의 첫 여기자였다. 말을 잘 못한 데다 눈치조차 없으니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의견이 나뉘긴 했지만 솔직한 발언이 인상적이었다는 의견이 대세로 굳어지면서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그래봤자 회사원, 그래도 회사원...

 


그렇게 첫 회사에 들어가고 한 번의 이직과 1년의 공백기를 거쳐 어느덧 기자로서의 삶은 10년을 훌쩍 넘겼다. 칵테일은 잘하는 바텐더가 만들면 적당히 만들어도 맛있고 그렇지 않은 바텐더가 만들면 정성껏 만들어도 맛이 없다고 한다. 나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기사를 그럭저럭 적당히 쓸 줄 아는, 특급호텔까진 아니어도 제법 큰 바의 바텐더 정도의 기자가 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을 하면 할수록, 기사를 쓰면 쓸수록 망설이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이쯤 되면 대단한 결단력이 생기고 나만의 철학과 가치관도 확고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정작 지금의 나는 10년 전의 그 면접장 햇병아리 때보다도 훨씬 더 망설이고 있다. 특히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더 자주 걸음을 멈췄다.

     

그게 꼭 나쁘지는 않았다. 폼은 좀 안 날지라도 헤아려야 할 생각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었다. 고민의 순간마다 그렇게 멈춰 섰다.

살면서 단호한 확신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많이 목격했다. 그 확신은 어지간한 자극에는 반응조차 하지 않고 앞으로만 돌진한다. 관성은 폭주기관차다. 고장 나서 멈출 수가 없다. 관성대로만 사는 건 본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도통 알 수 없게 만드는 고장 난 삶이다.

이제는 뭔가 결정을 내릴 때 따져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은 어떤가? 떳떳한가? 정의라는 거창한 단어는 나와는 영 거리가 멀고, 나는 다만 비겁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자신을 지키면서도 비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직은 뭐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겁하게 살기 싫은 내 최소한의 삶의 기준을 외면하고 싶진 않다. 왜냐하면 이건 어렵지만 고민하면서 살아야 하는, 내가 가장 오래오래 잘 돌봐야 하는 내 삶이니까.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집요하고 힘껏. 삶은 그렇게 애를 써야 한다. 나를 잃지 않으려고 끝내 몸부림치는 것. 10년 넘게 기자로 살고, 사회생활에서 여기저기 부딪쳐도 끝내 사수하고 있는 나의 솔직함이란 그렇게 절박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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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이 포함된 에세이는 《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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