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도시, 서울'을 읽고.
누군가의 인스타 피드에서 보고서, 보고싶은 책 리스트로 넣어둔 책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방콕 모드를 하면서 읽게 된 책이었다.
쪽방촌에 대한 기사를 취재한 기자의 르포물. 화려하고, 볼거리 많은 서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많았지만, 같은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잘 드러나지 않는 쪽방촌에 대해서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확 구미가 당겼다. 게다가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많은 쪽방촌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읽는 내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쪽방촌이 부자들의 비즈니스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이기도 했다.
책은 크게 두 군데의 쪽방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용산구 쪽의 쪽방촌과 대학가의 쪽방촌. 대학가에서 자취를 해보지 않았던 탓에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쪽방촌과 달리, 대학가 쪽에도 쪽방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은연 중에 '그들은 그럴만한 마인드를 지녔으니까 그곳에 사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편견이 미안할만큼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던 책. 보이지 않는 희망과 그 희망을 붙잡으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에, 책을 읽는 내내 뭔가 모를 고통이 느껴질 정도였다.
인간적 연민이 생기려다가도, 그의 허풍에 다시 사그라지는 일이 반복됐다.
오히려 과시하듯 내뱉는 화려한 단어들은, 손톱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검댕이가 보여주는 그의 현실과 대비되어 더욱 공허하게 들렸다.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을 보며, 연민과 허풍에 그러한 마음이 사그러드는 감정이 반복되었다는 기자. 흔히 말하는 자격지심같은 마음에 괜시리 늘어놓는 허풍에 기자가 느꼈을 감정이 어느 정도 공감이 되었다. 이러한 허풍은 사실 쪽방촌에 사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남들에게 보여지는 브랜드가 가득한 옷, 차를 구입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던 지인의 모습이 알고보니 남들이 보면 빈틈이 많은 가정 환경을 감추기 위한 그의 수단이었다는 것을 나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저소득 가정을 위한 봉사활동을 여러 차례 했었기에, 이러한 경험을 그때도 느꼈었다. 이런 태도를 지닌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사실 나도 모르게 연민보다는 허풍에 가득찬 그들의 자격지심 어린 듯한 말에 연민이 사그러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는 수단이 되었을 터인디, 내가 너무 배려없이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닌가 라는 반성이 들기도 했다.
사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사연과 환경을 이용해 '쪽방촌 비즈니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국가에서 매달 지원받는 장애인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금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월세 30~50만원 정도면 보증금만 있다면 더 좋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 금액이다. 그 보증금이 없어 그곳에서 근근이 버티는 그들을 쪽방촌 비즈니스는 이용한다. 쪽방은 대부분 무허가 숙박업이기 때문에 수익이 드러나지 않는 현금으로 금액이 오고가, 탈세 창구로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대략 9채 건물에 100칸 정도의 방이 존재하는 규모에 실질적으로 한달에 거둬들이는 수익도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사이사이에 작동하는 다양한 불공정을 애써 무시하는 까닭은, 우리 사회가 "내가 열심히 해서 정상에 오르는 것" "내가 데뷔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능력주의 신화를 신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유독 서울에 집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방에서 무리해서라도 이러한 상황들을 감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이러한 불공정을 조금만 견디더라도, 나도 어느정도 사람들이 말하는 '평균'에 들어서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이전에 김애란의 책에서 '평균의 원 안에 들어서기 위한 노력' 늬앙스의 문구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도대체 그 평균이 무엇일지, 조금은 편하게 그 평균에 안착했던 나는 그 평균에 들어서지 조차 못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이정도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과 왠지 모를 미안함이 느껴졌다. 특히 대학가 쪽방촌에 거주한다는 누군가가 '집은 씻는 곳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조금만 버티고 더 넓은 곳으로 갈 예정이다.'라는 인터뷰가 있었는데, 일을 마치고 돌아와 가장 큰 안식처가 되어야 할 집이 그에게는 팍팍하고 무심한 서울의 모습이 집에까지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세상 사람들은 쪽방 사람들이 그곳에 살아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가난을 견뎌야만 한다고 말하죠. 그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청년은 '빈곤의 표상'이 됨과 동시에 여러 '가능성'을 내포하는 이중적 존재가 돼버렸다. 이런 기본적인 욕구와 희망도 뒷받쳐 주지 못하고 어떻게든 청년을 착취하려는 사회가, 결혼, 출산 등 재생산을 위한 많은 것을 요구해도 되는 걸까.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대표하는 두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덮으면서, 그들이 그렇게 견뎌내야만 하는 환경과 이유들을 더 들여다보지 않고, 단순히 겉만 보고서 그들에게 편견이 담긴 아픈 시선과 무리한 요구들을 했던 것은 아닐까, 라는 반성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상황을 들어보니, 쪽방촌 비즈니스 사업을 하는 이들은 본인들의 해가 없으니, 국가에서 지원하는 사업들도 모두 거절하고 본인들의 이익을 챙기기 바쁘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조금은 무심한 우리의 모습이 미안하기도, 화가 나기도 했는데, 코로나가 빗발치는 요즘 '쪽방촌의 소독을 청원합니다.'라는 누군가의 작지만 큰 염려가 담긴 청원글을 보면서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는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이, 그리고 우리 개인의 차원에서는 편견이 담기지 않은 시선과 따듯한 한마디, 그리고 힘내서 희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심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237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