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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님 Mar 26. 2020

#43. 조금은 부러운, 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

더글라스 케네디의 '오로르'를 읽고

소설 '빅 픽처'를 읽고나서 한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더글라스 케네디였다. 지금은 독서의 폭이 넓어지면서 김애란, 생택쥐페리 등 다양한 작가들이 그 뒤를 잇고 있어 어느 순간부터는 그에 대한 애정이 식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어느 순간부터 비슷한 패턴의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서인걸까. 그의 책을 손에서 놓은지 꽤 되었다. 그러다 발견한 신간 소식에 눈이 갔던 이유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마음을 읽는 아이에 대한 동화같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조금 신선했기 때문이었다. 아홉살 인생, 좀머씨 이야기 등 어린 아이의 시각에서 쓴 책을 최근에 재밌게 읽었던 지라, 이번 더글라스 케네디 신간은 나오자마자 바로 주문하였다. 그리고 역시나 이전에 읽었던 더글라스 케네디 소설과는 사뭇 달랐고 가장 재밌게 읽은 그의 책이 되었다.



오로르는 삽화가 중간에 있고 전체적인 분량이 적어 가볍게 읽기 좋다. 게다가 어린 아이의 시각에서 쓴 책이다 보니 더욱 쉽게 읽힌다. 줄거리 자체는 참신함이 있다고 하기에 어려우나, 주인공 오로르의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문득 요즘 일상에서 내가 놓치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어 마음에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일에 집중하거나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하는 게 슬픔을 밀어내는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어른들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오로르만의 시각. 그러나 자신의 엄마, 아빠, 주변 어른들이 아둥바둥 견뎌내며 살아가는 모습이 보이는 대목이라 조금 먹먹하기도, 공감이 가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이전에 한창 마음의 슬럼프에 빠졌을 때, 이를 친한 오빠에게 토로했더니 내가 좋아하는 행위들을 리스트업을 해보고 그 일들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즐거운 생각을 해보라고 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러한 슬픔을 밀어낼 수 있었던 순간들은 크고 거창하기보다는 단순하게 아무 생각없이 집중할 수 있는 일을 할 때거나 소소하지만 작게나마 즐거움을 주는 행동들이었다. 얼마전에 한 인터뷰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행복은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빈도가 더 중요하다는 그 내용이 말이다.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 자기 입으로 자기 죄를 밝히는 이야기가 꼭 나온다고. 나쁜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악의를 숨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얼마 전에 알게 된 사람이, 비슷한 경우였다. 처음에는 너무 밝고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잘해서 사람들이 마냥 '성격 좋다-'라고 하는 사람이었는데, 친해지고 보니 앞에서는 상냥하지만 뒤에서 그 사람들의 험담을 일상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를 알고 나서 그 사람을 보고 나니,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선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악의에서 나오는 고도의 비꼬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도 나쁜 사람은 어떻게든 본인의 악의를 숨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마침 이 대목이 책에서 나와 가장 와닿는 대목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잿빛인 데에는 좋은 점도 있어. 
잿빛인 날이 많기 때문에 푸르른 날을 더 아름답게 느낄 수 있어. 
밝고 행복한 날만 계속될 수는 없어. 잿빛도 삶의 일부야.

어린 아이인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그런데 최근에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일상에서 너무나 소소하고 빈번하게 일어나던 친구들과의 만남, 운동, 햇빛이 쏟아지는 카페에서 멍때리기, 좋은 공기 마시면서 광합성 나들이 등 소소한 일상들을 섣불리 하지 못하는 요즘, 그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들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재택 근무를 시작하면서 몇 주 째 달고 있는 위염, 식도염. 그리고 최근에 통보받은 암까지도 직접 마주하고 나니 건강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 코로나 때문에 얻게 되는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있었다. 그러나 스트레스 최소화가 올해 내 목표인만큼, 이러한 것들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조금 넉넉하게 먹어보기로 했다. 언젠가는 이것 또한 별일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테니까.




그렇지만 이 수많은 대목들 중에서도 오로르를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말을 하지 못하는 오로르는 본인의 모습을 장애라 보지 않고 희망이 없다 섣불리 말하지 않고, '나는 이걸 못하지만 이걸 잘해요!'라고 다른 장점이 있다고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당당함이었다. 2020년 새해가 되면서 터진 여러 우울한 사건들 속에서도 잘 버텨내고 있는 요즘이라 더 와닿는 책이면서도, 많은 개인적인 생각들을 맞물려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책이라 더 좋았던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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