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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님 Dec 24. 2018

#30. 내가 살아있다는 신호, 불안감에 대해

인생학교의 '평온'을 읽고.

불안한 기분은 내 삶이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가 아니라
그저 내가 살아 있다는 신호일 뿐이다.


이전에 알랭드 보통이 속해 있는 인생학교 시리즈를 꽤 재미있게 읽었었다. 인생학교에서 새로운 시리즈를 출간했다는 소식을 온라인 서점을 투어하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고, 회사 라이브러리에 냉큼 신청해서 읽게 되었다.


평온. 나는 왜 그 많은 시리즈 중 평온을 읽게 되었을까. 한 해를 정리하는 연말이기도 했고, 감정기복이 꽤 심한 나이기에 내년에는 좀더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담겨져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 때문에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그런데 책에서는 말한다. 평온을 갈구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것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그것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책을 초반에 읽으면서 평온을 얻는 방법들이 편하게 와닿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현자 정도의 느낌이라는 건데 너무 비현실적이 아닌가 라는 불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불안과 평온에 대한 정의, 다스리는 방법을 쭉 읽고 나니, 책을 덮고 난 후에는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었다.


어떤 일이 '끔찍하다' 혹은 '환상적이다'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 일 자체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 한구석에 은밀하게 만들어놓은 '정상'이라는 기준과
비교해서 판단한다.


우리가 기분이 나쁘고 분노에 쌓이는 순간은 그 자체로 기분이 나빠서라기보다는 기존에 갖고 있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라고 한다. 내가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났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니, 그런 순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매번 그 순간들에서 나는 내 감정들을 옳은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변명하고 해명하려 했다. 내가 내세운 '정상'이라는 기준은 나에게만 적용이 된다.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적용시킬 수 없다. 이는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동일하게 각자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를 좀더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기준과 기대치를 완화시키는 것이 평온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당연하면서도 굉장히 와닿았던 문구였다.


책에서는 평온을 얻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을 언급한다. 시각, 청각, 공간적인 영향을 언급하는 부분들은 굉장히 흥미롭다. 특히, 우리보다 굉장히 큰 공간을 마주할 때 느끼는 웅장함을 통해, 본인이 자연에 비했을 때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문제들도 작고 별 것 아닌 것처럼 상대적으로 느끼게 해준다는 부분에서는 많은 공감이 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그 웅장함을 느끼면서 자신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자각하기 위해서 그러한 것이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한없이 채찍질을 하는 나 자신이 여행에 푹 빠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무도 날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채근하는 사람도 없고, 그 수많은 사람들과 낯선 공간에서 나는 별 것 아니라는 기분이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힐링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여행에 특별한 환상을 가지는 것은 자뭇 더 큰 실망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지양하는 것이 좋다라는 충고를 되새겼다.


이따금씩 퇴행하는 게 필요하다는 사실은 성숙하는 데 실패했다는 신호가 아니라
현명한 어른이 자신의 근원적 불완전성과 불충분성을 기꺼이 인정하는 일로
인식되어야 한다.


애초에 불안이 없어지길 바라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 큰 기대다. 불안은 사람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책 전반에서는 불안을 느끼고, 그에 대한 위안을 얻길 바라고, 평온을 바라는 것을 불편하고 나쁘게 여기지 말라고 언급한다. 사람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이고, 가끔은 그러한 퇴행이 자신의 불완정성을 이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정들을 퇴행이라고 불편하게 여기기보다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좀더 나아질 수 있는 방향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불안을 극복하고 평온을 찾아가는, 그리고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이었다.


이 책이 좋았던 것은 평온을 얻기 위한 방법을 언급한 부분보다도 불안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 우리가 평온을 바라는 이유를 설득적으로 기재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느껴지는 불안감, 평온하지 못한 상태들을 그럴 수 있다는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잘못된 감정이라고 채찍질하지 않고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어 좀더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말에 참 잘 맞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8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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