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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Jun 20. 2020

언어를 잘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사회언어학 이야기

팬데믹으로 두 달간 열지 못해 결국 문 닫아버린 버블티 가게를 보고, 8살짜리 딸이 말했다.

엄마 저 가게는 파산했나 봐요.


컵에 수돗물을 담아 놓은 10살짜리 아들이 말했다.

이거 수도꼭지 물이니까 마시지 마.


(해외에서 태어나 계속 살고 있는 제 아이들의 언어 습득 상태는 전에 쓴 글을 참고하세요.)


분명히 뭔가 어색한데 뭐가 틀렸는지 모르겠다. 이런 것을 연구하는 것이 사회언어학이다.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여러 유의어 중 선택하는 단어의 패턴 연구하거나, 같은 언어의 발음이 조직이나, 지역, 구성원들에 따라 변하는 패턴, 같이 기능을 하는 문법 형태 중 무엇을 언제 선택하는지에 대한 패턴 등을 연구한다.

보통 엄마-딸 대화에서 집 근처 가게가 문을 닫아버렸다면 보통 한국에 사는 아이들은 어떻게 말했을까? 아마도 

"엄마, 저 가게 망했나 봐요." 또는 "문 닫았나 봐요."

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왜 나의 딸은 '파산하다'라는 상황에 안 맞는 단어를 굳이, 8살짜리에게 어울리지도 않게 사용했을까? 그건 우리 딸이 책에서 이런 상황들을 접했기 때문이고, 그 상황에서 사용한 단어가 '파산하다'였기 때문이다. 우리 또래는 기억하겠지만 '빨간 머리 앤'에서 보면 사랑하는 매튜 아저씨가 아베이 은행이 파산한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서 돌아가시게 된다. 우리 딸은 '빨간 머리 앤'의 엄청난 팬이고, 아마도 그 만화, 책은 20번도 넘게 봤을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는 '은행이 망해버린 것'을 '파산하다'라고 어울리게 표현한 책/만화를 통해 버블티 가게도 '파산했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우리 큰 애는 영어로 'Tap water'를 한국어로 직역하여 '수도꼭지 물'이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쓰지 않는다.


우리 아이의 한국어 실력은 항상 한국 학교에서 연초에 새로 만난 선생님들께서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됐나 봐요."라고 하실 정도이다. 아마도 한국말로 조잘조잘, 영어 단어 섞지 않고 잘 떠들어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잘 들어보면 이런 어휘 선택이나 어휘 확장에서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작년에 아이가 한 말이다.

"엄마, 빨리 점심 잡어."

엥? 이게 무슨 말이지? 상황과 어휘를 분석해 보고 혼자 크게 웃었다.

"엄마, 빨리 점심 잡수세요."를 반말로 바꿔서 이야기한 것! 보통 존댓말은 동사에다가 '으시'를 붙여서 길어지거나, 어휘적 존대 표현은 반말보다 길다. 예를 들어, '보다 →보시다, 먹다 →드시다, 자다 → 주무시다' 등으로 길어지게 된다. 우리 아이는 '잡수세요'라는 존대 표현을 주로 사용했는데 그걸 반말로 한다고 '수세요'를 빼고 '잡어'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 뇌의 규칙을 확장/적용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다!!)


이것 말고도 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관찰하고 기록한 것을 보면 한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잠깐 나타나고 바로 사라지는 어휘 오류 현상이나, 나타나지 않는 문법 규칙 프로세스 오류 등이 많이 나타난다. 물론 이것 때문에 '한국어를 잘 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국어를 진짜 잘 하는'그런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는 어떠할까?

무조건 어려운 단어, 어려운 문법, 복잡한 문장 구조를 구사하는 것이 언어를 잘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상황, 상대, 조건, 주제 등에 맞는 단어와 문장 구조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제는 무슨 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 한 미국인 교수랑 메일로 대화하던 중 다른 사람의 발표에 대해서 'Super Jealous!'라고 코멘트를 한 것을 봤다. 이런, 처음에는 이것이 긍정적인 의미인지, 부정적으로 말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난 학교에서 'Jealous'를 배울 때 웬지 부정적인 상황에서 쓸 것처럼 배웠는데... 하지만 이어서 내용을 보니 크게 칭찬을 하는 내용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15년 전쯤 마지막으로 봤던 TOEIC 점수는 800 점이었고, 대학원 봤던 토플도 그냥 입학 가능한 점수이기는 했으나 엄청 높은 점수도 아니었다. 지금도 평소에 사용하는 영어는 그저 평범한 수준이다. 하지만 일할 사용하는 영어는 당연히 professional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 논문을 읽을 때 마음에 드는 표현이나, 문장 구조를 적어 놓는다. 또는 어떤 이론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단어와 그 예문을 적어 놓는 단어장도 있다. 나도 글을 쓸 때 그 단어장을 보면서 이 바닥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랑 문장 구조를 쓰도록 한다. 그렇다, '이 바닥에서 사용하는'이 핵심인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문법에 맞게, 교과서에서 배운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상황 맥락에 맞게 사용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한국어를 가르칠 때에도 학생들이 쓴 문장을 보면 틀리지는 않았지만 '한국 사람이 이렇게 사용하지 않아'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냥 두어도 상관없지만 아마도 한국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누구나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사회언어학에서도 외국어를 배울 때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는 사회언어학적인 능력 (상황 맥락에 어울리게 말하는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Hymes, 1972). 따라서 진짜 언어를 잘 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문법이나 단어를 많이 아는 것보다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것이 아닐까?  





cover image: https://www.york.ac.uk/study/postgraduate-taught/courses/ma-sociolinguis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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