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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Nov 21. 2021

한국어를 말할 때

종종 사회평론을 하거나 비평을 한다는 사람들이 나와서 한국어의 특징을 이야기하면서 그 특징의 의미를 해석하는 걸 보면 나로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을 때가 많다.

사실 각 언어에는 특히 발달한 어휘뿐만 아니라 더 발달한 문장 구조도 다 다른데, 예를 들어서 일본어에는 수동, 사역 구조가 발달을 했고, 중국어에는 능격 동사 (하나의 동사가 형태 변화 없이 자동사와 타동사로 다 쓰일 수 있는 것), 영어에는 명사가 다른 언어에 비해서 더 많다. 한국어 역시, 내가 전에 썼던 '그런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게 어때서? 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의견이나 생각을 선언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예의에 맞다고 생각하는 사회적인 암묵적 합의가 있다.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서 '이것은 이렇습니다', '이 사건의 이유는 이렇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라고 직접적인 표현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공격적이거나 건방지다고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누가 정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 (social perception)이 오랜 시간에 거쳐 발전되었기 때문에 누구 하나가 이것을 '좋다, 나쁘다' 평가할 것은 아니다. 사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겸양 표현을 중시하는 한국어의 특징이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다.


또한 한국어는 논항 (주어, 목적어 등등)이 자주 생략되는 것을 그 특징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그것은 한국 사람들은 말할 때 문장의 주체를 모호하게 하여 좋지 않은 말하기 습관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전문적으로 말하면 '주제 중심 언어'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분류를 하는데 중국어나 한국어가 이런 주제 중심 언어 중 대표적인 언어이다. 그냥 주어나 목적어가 생략이 가능한 지만 놓고 봤을 때에는 세계에 정말 많은 언어들이 이것을 허용한다. 스페인어로 대표되는 라틴계 언어 (프랑스어 제외)도 대부분 주어나 목적어 생략이 가능하고 심지어는 독일어 같은 게르만계 언어도 특정한 문장 구조에서는 주어 생략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동사의 격변화가 있는 언어들은 주어를 표기하지 않아도 동사 형태가 주어를 알려 주기 때문에 한국어와는 다른 경제적인 이유로 주어를 생략한다고 볼 수 있다. 주어에 대한 정보가 이미 동사에 들어 있는데 주어를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 생략이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 한국어는 어째서 주어나 목적어 생략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Kim (2008) 연구를 보면, 친한 사람과의 대화를 분석한 결과 주어 생략 58%, 조사(이/가) 없는 주어 (예: 철수 밥을 먹어) 13%, 조사까지 함께 있는 주어 (예: 철수가 밥을 먹어) 29%로 나타났다고 한다. 대화 중 반이 넘게 주어를 생략한 것인데 어쩌면 한국어는 주어나 목적어를 생략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경우에만 주어나 목적어를 쓰는 것이 맞다고 볼 수도 있겠다. 특히 일인칭과 이인칭은 90% 이상 생략이 된다.

(학술적 논의는 논문들을 찾아보시길...)


마지막으로 한국어의 존대 표현이다. 한국 사람들이 남을  존중하고 예의가 바르기 때문에 존대 표현이 발달했다는 주장을 하는 라디오 패널들이 많은데, 이건 정말이지 어불성설이다. 그럼 존대 표현이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국민들은 예의가 없다는 ? 존대 표현의 발달은 한국 문화의 수직적 인간관계가 반영된 언어적 특징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인간관계가 수직적으로 발달하다 보니  인간관계를 나타내는 언어 습관도 필요해졌을 것이고 나와 상대가 서로 어떤 경어법을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서로에 대한 관계 인식을 나타낼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존대 표현  높임을 흔히 말하는 연장자에게만 쓰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 (: 사장, 선생 등등의 표현), 현재 상태에서의 하이어라키가 높다고 인지되는 대상 (: 직원이 손님에게 사용하는 존대), 심리적 거리가 먼 대산 (: 나보다 어린 모르는 사람에게 반말 사용하지 않음)에게도 쓰게 되는 것이다.





언어의 특징, 특히 이런 사회언어학적인 특징은 절대 가치 판단의 대상이   없다. 이것은 현상이고 사회가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에  자체로 좋다, 나쁘다가   없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개인의 호불호는 있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언어를 낮게 보거나 우러러볼 가치를 판단할  없다는 뜻이다. 한국어는 한국어대로, 다른 언어는   언어대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그래서  나라의 문화를 알아야 언어를  배울  있다는 말이 나온  아닐는지 싶다.


Kim, Taeho. 2008. “Subject and Object Markings in Conversational Korean.” Doctoral dissertation, The University at Buffalo,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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