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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Mar 04. 2022

70 대 30

좋아하는 작업과 어쩔 수 없이 하는 작업의 황금 비율

오늘 아침엔 같이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컴퓨터 공학과의 한 교수와 미팅을 하다가 요즘 사는 이야기를 잠시 나누게 되었다. 요는 자기가 'extremely BUSY (극단에 치달을 정도로 바빠)!'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요즘에 일 때문에 이메일을 보내면 항상 '너무 바빠서 이메일이 늦었어.', '너무 바빠서 이번 주에는 미팅 못 할 것 같아.' 등의 답장을 보내더니 이제 너무 습관적으로 '바쁘다'. 학교는 학기 주기로 생활 패턴이 정해지기 때문에 사실 학기 중에는 시간적으로 좀 여유가 없는 편이기는 하다. 일단 수업 시간+수업 준비 시간을 최우선적으로 빼놓아야 하기 때문에 연구 관련 일은 학기 중에는 뒤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교수라는 직업의 특성상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가 용이하고 나름 시간 관리를 융통성 있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너무, 죽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바쁘기는 쉽지 않다. 그러고 보면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정신없다.


바쁘다는 것이 일을 열심히(?), 많이(?) 한다는 것과 동의어라고 생각하는 걸까?

바쁘니 말 걸지 말라는 걸까?

난 중요한 사람이라서 바쁘다는 걸까?


 누군가 나에게 '요즘 바쁘시죠?'라고 물으면 '아뇨,  바쁜데요'라고 대답해서 상대방이  민망해지는 타입이라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민망하게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정말 바쁘지 않다. 수업 시간을 빼놓고는 정해진 기간 안에 내가 원하는 시간을 정해서 일을  수가 있기 때문에 스케줄링을 해서 처리하면 얼추 저녁 전에 일이 마무리되는 것 같다. 보통 주중에는  시간 단위로 플래너에 미리 계획을 세운 다음   과제에 대해서는 표시를  둔다. 그렇게 하면 정해진 시간 안에 보통  처리가 가능하다. 밤에도 일할 때가 있지만 그건 내가 선택해서 뭔가 더 읽거나 아니면 채점 같은 걸 하는 것이니 그리 스트레스는 없다.

나의  다른 비장의 무기는 바로 'NO라고 말할  있는 자세'이다. 학교에선 어느 정도 시니어가 되면 행정 업무가 엄청 떨어진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NO'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있다. 물론 이유도 함께!  이유란 '하루 정해진 시간은 24시간뿐이라서, 같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서  좋은 결과를 보여   있는 일에 투자할래.'라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가성비 갑인 업무를 선택해서 하겠다는 뜻이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 바로 가성비 ! 반대로 내가  모르고 잘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주면 나는 바로 'NO'이다. 물론 이렇게 밉상처럼 구는 것으로 인해 보는 약간의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 월급이나 기타 등등의 측면에서 손해를  수는 있겠지만 내가 감당할  있을 정도라면 ,  선택의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나의 동료 중에는 월급이나 기타 혜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그들이 이런 일들을   주니 내가 NO해도 학과가 돌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거절할 수만은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70대 30 모델이 작동한다.


당연히 직장 생활하면서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으니까... 일단 내 업무의 70%은 내가 좋아하고 즐기고 자발적으로 만들어서 하는 일로, 30%는 그다지 즐기지는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로 포트폴리오를 짠다. 이렇게 정해진 비율로 일의 종류를 구성해 보면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중에도 그다지 괴롭지 않다. 그 일을 해치우고 나면 또 신나고 즐거운 업무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오늘 그 컴퓨터 공학과 동료도 학과에서 자기에게 행정업무를 많이 주면서 연구는 사치라고 했단다. 그래서 나의 70대 30 전략을 이야기해 주니 자기도 해 보겠다고 한다. 우린 이제 어른이고 자기가 선택을 한 다음 책임을 지면 될 것을,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거절하면 무능력자처럼 보일까 봐 일을 들입다 받아 놓고 바쁘다고 한탄하니... 정말 안 될 일이다. 바쁘다는 상황에 매몰되어 정말 바쁘고 정신없이 느껴지고 그러다 보면 꼭 일도 더 잘 안 된다. 내가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책임감 있게 하면서 못 하는 일에 대해서는 선을 그으면 훨씬 쉽다. NO 하면 절대 안 될 것 같다고? 흠... 사실 그렇지 않다. 나도 이 학교에서 행정 역할을 제안받고 처음 거절했을 땐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지나면서 그들도 나의 이런 모습에 익숙해졌고, 서로 적응을 하게 되었다.

요즘 번아웃이 상당히 문제라고 하는데 절대로 번 아웃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70대 30 전략을 사용해 보면 어떨까? 물론 업무량의 파이 자체가 너무 크면 이것도 작동이 안 되겠지만...


(물론 한국은 교수들의 수업 시수 자체가 너무 많아서 이런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보통 한 학기에 한 과목 가르치는데, 한국에 계신 나의 선생님께선 아직도 한 학기에 다섯 과목까지 가르치기도 하신다고 하니... 다섯 과목은 거의 개인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보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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