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업과 어쩔 수 없이 하는 작업의 황금 비율
오늘 아침엔 같이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컴퓨터 공학과의 한 교수와 미팅을 하다가 요즘 사는 이야기를 잠시 나누게 되었다. 요는 자기가 'extremely BUSY (극단에 치달을 정도로 바빠)!'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요즘에 일 때문에 이메일을 보내면 항상 '너무 바빠서 이메일이 늦었어.', '너무 바빠서 이번 주에는 미팅 못 할 것 같아.' 등의 답장을 보내더니 이제 너무 습관적으로 '바쁘다'. 학교는 학기 주기로 생활 패턴이 정해지기 때문에 사실 학기 중에는 시간적으로 좀 여유가 없는 편이기는 하다. 일단 수업 시간+수업 준비 시간을 최우선적으로 빼놓아야 하기 때문에 연구 관련 일은 학기 중에는 뒤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교수라는 직업의 특성상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가 용이하고 나름 시간 관리를 융통성 있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너무, 죽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바쁘기는 쉽지 않다. 그러고 보면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정신없다.
바쁘다는 것이 일을 열심히(?), 많이(?) 한다는 것과 동의어라고 생각하는 걸까?
바쁘니 말 걸지 말라는 걸까?
난 중요한 사람이라서 바쁘다는 걸까?
난 누군가 나에게 '요즘 바쁘시죠?'라고 물으면 '아뇨, 안 바쁜데요'라고 대답해서 상대방이 좀 민망해지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민망하게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난 정말 바쁘지 않다. 수업 시간을 빼놓고는 정해진 기간 안에 내가 원하는 시간을 정해서 일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스케줄링을 해서 처리하면 얼추 저녁 전에 일이 마무리되는 것 같다. 보통 주중에는 한 시간 단위로 플래너에 미리 계획을 세운 다음 다 한 과제에 대해서는 표시를 해 둔다. 그렇게 하면 정해진 시간 안에 보통 일 처리가 가능하다. 밤에도 일할 때가 있지만 그건 내가 선택해서 뭔가 더 읽거나 아니면 채점 같은 걸 하는 것이니 그리 스트레스는 없다.
나의 또 다른 비장의 무기는 바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자세'이다. 학교에선 어느 정도 시니어가 되면 행정 업무가 엄청 떨어진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NO'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있다. 물론 이유도 함께! 그 이유란 '하루 정해진 시간은 24시간뿐이라서, 같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서 더 좋은 결과를 보여 줄 수 있는 일에 투자할래.'라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가성비 갑인 업무를 선택해서 하겠다는 뜻이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 바로 가성비 갑! 반대로 내가 잘 모르고 잘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주면 나는 바로 'NO'이다. 물론 이렇게 밉상처럼 구는 것으로 인해 보는 약간의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 월급이나 기타 등등의 측면에서 손해를 볼 수는 있겠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라면 뭐, 내 선택의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나의 동료 중에는 월급이나 기타 혜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그들이 이런 일들을 다 해 주니 내가 NO해도 학과가 돌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거절할 수만은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70대 30 모델이 작동한다.
당연히 직장 생활하면서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으니까... 일단 내 업무의 70%은 내가 좋아하고 즐기고 자발적으로 만들어서 하는 일로, 30%는 그다지 즐기지는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로 포트폴리오를 짠다. 이렇게 정해진 비율로 일의 종류를 구성해 보면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중에도 그다지 괴롭지 않다. 그 일을 해치우고 나면 또 신나고 즐거운 업무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오늘 그 컴퓨터 공학과 동료도 학과에서 자기에게 행정업무를 많이 주면서 연구는 사치라고 했단다. 그래서 나의 70대 30 전략을 이야기해 주니 자기도 해 보겠다고 한다. 우린 이제 어른이고 자기가 선택을 한 다음 책임을 지면 될 것을,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거절하면 무능력자처럼 보일까 봐 일을 들입다 받아 놓고 바쁘다고 한탄하니... 정말 안 될 일이다. 바쁘다는 상황에 매몰되어 정말 바쁘고 정신없이 느껴지고 그러다 보면 꼭 일도 더 잘 안 된다. 내가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책임감 있게 하면서 못 하는 일에 대해서는 선을 그으면 훨씬 쉽다. NO 하면 절대 안 될 것 같다고? 흠... 사실 그렇지 않다. 나도 이 학교에서 행정 역할을 제안받고 처음 거절했을 땐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지나면서 그들도 나의 이런 모습에 익숙해졌고, 서로 적응을 하게 되었다.
요즘 번아웃이 상당히 문제라고 하는데 절대로 번 아웃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70대 30 전략을 사용해 보면 어떨까? 물론 업무량의 파이 자체가 너무 크면 이것도 작동이 안 되겠지만...
(물론 한국은 교수들의 수업 시수 자체가 너무 많아서 이런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보통 한 학기에 한 과목 가르치는데, 한국에 계신 나의 선생님께선 아직도 한 학기에 다섯 과목까지 가르치기도 하신다고 하니... 다섯 과목은 거의 개인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보면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