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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Apr 19. 2023

헤어지고 내력을 키우는 방법

나의 아저씨의 외력과 내력

2022년 3월 31일. 배우 현빈과 손예진이 결혼하던 그 날, 나는 약 2년간 장거리 연애 중이던 영국인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나는 뉴질랜드에, 그는 영국에서 생활하며 코로나가 끝나고 국경 이동이 가능해지는 그 날만을 손꼽던 우리였다. 마침내 내가 뉴질랜드 생활을 정리하고 그를 만나러 영국으로 떠나기 일주일 전, 그러니까 한국의 두 배우가 결혼하던 바로 그 날, 그는 영상 통화로 내게 눈물을 보이며 '다른 여자를 그리워하고 있어.' 라고 전해왔다. 그렇게 나는 그와 갑작스런 헤어짐을 맞게 되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영국이 아닌 한국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영국으로 떠나기 전 우리가 헤어지게 되었다는 내용의 카톡을 돌려야했다. 영국행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다시 한국행 티켓을 끊어야 했다. 공교롭게도 생년월일이 같았던 우리 커플의 34번째 생일 파티를 런던에서 함께 하게 될 줄 알았던 나는, 졸지에 뉴질랜드에 있는 친구들에게 생일 날 위로를 받으며 '한 치 앞을 모르는게 인생인거지.' 라는 말을 되뇌어야 했다. 순간 순간 자주 정신이 없었고, 멍하니 눈물이 차오를 때가 있어도 그런 자식에겐 눈물도 아까우니 정신 바짝 차리자는 말을 줄곧 내게 해야했다.


사진: Unsplash의Jens Lelie


그렇게 2022년 4월 나는 정신 없이 귀국을 했다. 한국에 오면 좌골신경통의 뿌리를 뽑겠다 했던 나의 바람대로 귀국 후 일주일에 3번씩 한의원을 다니며 좌골신경통 치료에만 몰두했다. 그렇게 두 달이 흐른 어느 날, 통증의 부위와 정도가 많이 줄었다는게 느껴지자 '오늘 날씨도 좋은데 어디를 좀 가볼까?' 하는 생각이 나를 스쳤고, 이제는 충분히 갈 수 있겠다는 확신으로 그 생각을 낚아챌 수 있었다. 그렇게 인스타그램에서 본 한강 조망의 한 북카페를 찾았다. 음료 하나를 시키고 한쪽에 자리를 잡고, 책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여긴 이런 책들이 있구나.'

'이 작가, 신간이 나왔네.'    


관심이 가는 책들은 빼서 목차를 슥 한번 훑어보고 제자리에 뒀다. 아주 새로운 내용이랄 것은 없었지만

문득 새롭게 느껴지는 사실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책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비슷한 방향을 지향한다는 것.

그 어떤 책도 독자가 불행해지는 길을, 자신을 학대하는 법을 가르치지는 않는다는 것.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왔던 '외력과 내력'에 대해 그 즈음 자주 생각했다.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 진동,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거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세게,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




당시 나는 내가 외력에 잘 맞서왔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숙- 빠져나가버린 누군가의 빈자리에 대해서도, 몇년만에 찾은 한국에서 가끔 찾아오던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이제껏 뭐했지?' 하는 현타에 대해서도 그때 그때마다 잘 맞서왔다고. 그걸 위해 내가 했던 일이란 일단 덮어놓고 쉬는 것,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해보는 것, 그간 이뤄왔던 나의 작은 성취들을 매만져보며 나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다. 이건 외력에 맞서기 위해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들이었다. 내가 말하는 잘 맞서왔다는 것은 내 안에서 동요하는 감정의 진동을 나만 알 수 있게, 밖으로 표나지 않게 안간힘을 쓰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근데 그것만으로는 여의치 않았는지, 아니면 그제서야 그럴 기운이 생긴건지 스스로 내력을 한번 키워보자 싶어졌다. 내력을 키워 다시 중심을 내 안에 두고, 쓸데 없는 감정 소모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뒤돌아보거나 곁눈질 하지 않고, 흡족한 마음으로 내 길을 뚜벅 뚜벅 걸을 수 있도록.


사진: Unsplash의Thought Catalog


내력을 키우는데 가장 좋은 건 외력을 버텨낸 경험을 스스로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날까지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데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책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 바람에 크게 흔들렸던 경험들, 스스로의 마음 속 하중을 덜어냈던 방법들, 중심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단단한 진리들을 책을 통해 얻는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으로는 해야 할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차근히 해나가면서 하루를 충실히 잘 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내가 북카페에 간 모양이다. 그날 하루 만큼은 책과 함께 하고 싶었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와 나를 세차게 흔들던 외풍과 달리 내 하루만큼은 단단한 진리를 담은 책을 보며 내가 원하는대로 마무리 짓고 싶어서. 비록 그날 북카페에서 2시간 앉아 있고 그마저도 피곤해져서 집으로 급히 돌아오긴 했지만. 그래, 내력을 키우기 위해 체력부터 좀 키우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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