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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Apr 17. 2023

내 인생에 여한이 없으려면

이매진 드래곤스 콘서트장에서 생긴 일

2018년 5월 23일은 내가 전 앨범 전 곡을 다 아는 유일한 밴드, 뉴질랜드에 오기만 하면 내가 버섯발로 달려가겠다고 공언하던 밴드 '이매진 드래곤스'가 웰링턴에서 공연을 하던 날이었다. 2016년쯤 TV에서 나오는 그들의 'Demon'이라는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는 처음 그들에게 관심이 생겼고, 노래를 하나 둘 찾아듣다 어느새 앨범 전곡을 다 좋아하게 되었고, 그 후로는 앨범이 나오면 한 곡 한 곡 아껴 듣는 열성팬이 되었다. 그런 이매진 드래곤스가 뉴질랜드에 온다니 마음 같아서는 버선발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거리라 비행기를 타고 콘서트가 열리는 웰링턴이라는 도시로 날아갔다.


콘서트 전날 밤에 웰링턴에 도착해서 하룻밤 숙소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부터 공연장 앞에서 매서운 겨울 바닷 바람 맞으면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8시간 뒤쯤 마침내 입장문이 열리자마자 잽싸게 뛰어가 기어이 스탠딩 맨 앞줄을 차지했다. 화면으로만 보던 나의 가수의 실물을 보는데 내가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모든 곡을 있는 힘껏 따라 부르고 계속 방방 뛰었다. (그때만 해도 좌골신경통이 없던 때라 그게 가능했었다.)


사진: Unsplash의Austin Neill, 아쉽게도 이매진 드래곤스는 아닙니다.


콘서트 중간, 노래 한 곡이 끝나고 보컬 댄이 잠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무대를 밝히던 조명이 잠시 어두워지고, 방금 전의 열기는 온데간데 없이 공연장에도 잠깐의 적막이 흘렀다. 그때 물을 마시며 숨을 고르고 있던 댄을 향해 나도 모르게 이렇게 소리쳤다.


'I LOVE YOU!!!'


난 정말 그 순간에 충실했다. (누군가 내게 그때 왜 그랬었냐고 묻는다면, 다만 그 순간에 그냥 그러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왠지 그래야할 것만 같았다고 말할 것 같다.) 잠시 후 물을 다 마신 댄은 물병을 바닥에 두고 마이크로 천천히 다가오더니 이렇게 했다.


'I love you, too'


나는 내가 알러뷰를 외친 소리보다 더 크게 꺄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찾아오다니!'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난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짜릿한 순간을 선물받았다.


사진: Unsplash의Pablo Heimplatz


그날 콘서트 3시간 동안 내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키면서 정말 재밌게 놀았다. 이보다 더 어떻게 콘서트를 즐기겠냐고 생각하며 콘서트장을 나오던 내가 나도 모르게 했던 말은 '난 이제 콘서트에 여한이 없다!' 였다. 심지어 오늘 이후로 죽을 때까지 콘서트를 안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재밌었으면 다시 그렇게 놀고 싶다고 할 줄 알았는데, 나는 다시 못 논다고 해도 좋을 만큼 내 평생 콘서트의 여한은 여기서 다 풀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문득 샤워를 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내 인생을 마감할 때 내 인생에 여한이 없다는 그런 충만감이 아닐까. 아쉬움이나 미련이 한 톨도 남지 않고 내 모든 에너지를 활활 태워 지나간 그 시간에 아무런 여한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 대상은 비단 콘서트 관람만은 아닐테니까. 훗날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내게 또 다른 생이 없다고 해도 아쉽지 않을 만큼, 나는 이 생에서 하고 싶은 모든 걸 다 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건 정말 좋은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내 인생에 여한이 없으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좋아하는 걸 찾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매진 드래곤스가 아니라 다른 가수의 콘서트였다면 그만큼 재밌게 놀 수 없었다. 두번째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티켓팅을 위해서 쉬는 시간을 바꿨던 노력,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노력, 바닷바람에 오들오들 떨면서 줄을 섰던 나의 노력처럼. 마지막으로 기회가 왔을 때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마음껏 해봐야한다. 마음껏 노래 부르고, 사랑한다고 소리라도 빽 질러보고, 다시 없을 그 순간을 온몸으로 만끽해야 한다.


누군가와 애정을 주고받는 일, 세상을 궁금해 하고 그 속에 들어가 보는 일, 내 열정을 불사를 일을 찾는 일, 그 모두가 인생을 구성하는 일이라 한다면 당시에 나는 전혀 여한 없는 인생을 살고 있지 못했다. 어떤 건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고, 어떤 건 노력의 방향이 잘못되었나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 일상에서 나는 자주 답답했고, 처음 내가 꿈꾸던 것들과는 너무 멀어져 돌아갈 길마저 까마득해 보였다.


그럼에도 내 나름 찾은 여한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나로 하여금 어떤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해주었다. 아직 내게는 기회가 오지 않은 것이라는 희망.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얼마나 더 내가 이 답답한 일상을 버텨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모든 버팀의 시간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기회를 만나러 가기 위해 필요한 내 노력의 시간이라고 내 나름대로 혹은 내 마음대로 결론지었다.


사진: Unsplash의Alex Wigan


5년이 지난 지금은 여기에 덧붙여 또 다른 것들을 생각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과연 아쉬움이나 미련이 한 톨도 남지 않는 인생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같은 것들.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여한 없는 인생을 바라는 한, 그런 인생을 살 확률이 그렇지 않은 때보다는 훨씬 더 높다고 믿으며, 언젠가 이 시간이 다 지나가고 '나는 더 할 수 없을 만큼 다 해봤다.' 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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