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뉴질랜드에서 일을 하다 대학교 졸업식 참석차 한국에 들렀을 때 나는 깨끗하게 나를 비워낼 수 있는 장소를 알게 됐고 지금도 가끔 마음이 힘들 때는 나만의 힐링 공간인 그곳을 가자고 생각한다. 나에게 그 곳은 '절'이다. 그 당시 나는 영주권을 꼭 따야한다는 내 목표에 스스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드라이브 차 화개장터에 갔다 잠깐 근처 절에 들렀다. 차에서 내리고 사뭇 다른 공기에 심호흡도 크게 하며 천천히 숲길을 걸어 절에 다다르게 되었다.
대웅전에 들어갔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절 하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방석을 하나 집어들고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자비로운 얼굴로 앉아계신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자비로운 분 앞에서 '부처님 저 영주권 좀 잘 나올 수 있게 해주세요! 제 필생의 소원입니다!' 라는 말은 차마 못하겠더라. 절을 하는 내내 '부처님, 제가 욕심이 많습니다, 제가 욕심이 많습니다, 제가 욕심이 많습니다.' 라는 말만 연거푸 속으로 하다 끝에는 '제 욕심으로 제가 힘든거 압니다. 부디 이 어리석은 중생을 어여삐 여기셔서 제가 잘 헤쳐나갈 수 있게 지혜를 주세요.' 라고 해버렸다.
절을 하는 내내 눈물로 절을 했었고 그때 어디선가 응어리져 있던 많은 것들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2022년 초, 스페인 친구 캐롤에게 내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메신저로 전하게 되었다. 캐롤은 그때 남자친구가 갑자기 림프암 판정을 받아 남자친구 항암 치료차 스페인에 가있는 상태였다. 당시 내가 영국에 갔다 스페인에도 들릴 계획이었던터라 그 친구에게는 내가 헤어진 상황을 꼭 설명해야 했었다.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주던 친구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거라고 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남자친구의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는 내 질문에 치료도 잘 받고 있고, 최근에는 몸무게도 5키로나 늘어서 아마 올해중으로는 치료를 끝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정말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순간적으로 '네 남자친구가 괜찮아지게 해달라고 나도 신께 기도할게.' 라는 문자를 치려다 문득 '그래, 우리가 신께 기도하는 내용이라는건 이런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휘청거리긴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는 것을 이제는 경험으로 알고 있는 내용을 신께 기도하지는 않는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서, 오직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그곳으로 떠난 일이 부디 내가 바라는 쪽으로 매듭지어지기를 신께 간곡히 부탁드릴 때, 때로는 절규하듯 빌 때 그때 신께 기도한다.
Photo by. Mandy, 삼광사에서
난 자주 기도드리지 않는다. 너무 시덥잖은 내용으로 신을 자주 찾고 부르면 양치기 소년처럼 정말 신이 필요할 때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것만 같아서.혹여나 내가 신이 필요할 때만 찾는다고 밉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다가도, 신은 이런 내 마음도 다 아시는 분이 아니실까 해버리지만, 사실 상황이 정말 절박하면 이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다.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이별 후폭풍에 멍하니 헤어진 전 남자친구를 원망하던 날들 중에 작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았었다. '네가 다 망쳐버렸어. 우리 더 좋을 수 있었는데.' 라는 레파토리로 시작되던 원망은 그저 내가 만들어 놓은 허상에 대한 내 집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혼자 자주 읊조렸다. '제가 욕심이 많습니다. 그렇게 혼이 나고도 여전히 욕심이 많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 집착들을 내려놓겠습니다.'
1년이 지나 엊그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찾은 부산 삼광사에서 불상을 마주하고 서자 눈물이 났다. 그리고 부처님께 인사드렸다. '부처님의 자비 안에서 가벼워진 일상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그랬듯, 부처님은 다만 인자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