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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Apr 03. 2023

잘 살고 싶었는데, 잘 살 줄 알았는데

'잘 산다'는 말에 담긴 슬픔

얼마 전 '잘 산다' 는 말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 있었다. 우리는 잘 산다는 말을 쓰면서도 각자가 다른 의미와 기준을 가지고 그 말을 쓰는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 사이에서도 ‘야, 쟤네 집 되게 잘 살아.’ 라고 말할 때의 잘 산다는 말, (생각해보면 우린 어릴 때에도 꽤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동창들끼리 만났을 때 ‘너, 잘 살고 있어?’ 라고 물을 때의 잘 산다는 말. 이 두 말은 의미에서 그 차이가 있다.


'쟤 잘 산대.' 라고 말할 때는 100% 경제적인 차원에서 하는 말이고, '잘 살고 있어?' 라는 말은 큰 걱정이나 고민 없이 살아가고 있냐는 말이다.




얼마 전 친구 꾸꾸와 카톡을 주고 받다 진로 고민을 하던 꾸꾸가 자신이 고민하는 내용을 나에게 쭉 카톡으로 보냈는데 마지막에 이런 카톡이 와있었다.

    

'나 진짜 잘 살고 싶었는데.'


그 한 마디에 마음에 돌덩이가 하나 얹히는 느낌이었다.


몇 년 전 나도 나에게 그렇게 똑같이 얘기했던 날이 있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막 울면서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나 진짜 잘 살고 싶었는데.' 그런 말을 하던 밤이 있었다.


나와 꾸꾸가 '나 잘 살고 싶었는데...' 라고 할 때의 그 말은 사실 우리가 엄청난 걸 바라는 게 아니라서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한번 뿐인 인생에 현재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못 살고 억대 연봉을 못 받아서 '아, 나도 잘 살고 싶었는데'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었다.

     

'내가 엄청난 걸 바라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게 왜 이렇게 힘들까.'

사진: Unsplash의Ethan Brooke


그러다 엊그제, 내가 잊고 있던 또 다른 의미의 잘 산다는 말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하는 순간이 있었다.


아빠와 한창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내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아주 잘 지내고 있고, 최근 한 10년 중에 요즘이 제일 좋은 것 같다.' 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아빠는 툭하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한 중간치 정도 사는 것 같아. 아주 잘 사는 것도 아니고, 한 중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나는 잘 살고 싶었다며 울던 시간을 건너, 이제야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데 그걸 두고, '중간치 정도다, 넌 엄밀히 말해 잘 사는 건 아니다.' 라고 하시니, 그것도 남도 아닌 아빠가 그렇게 말씀 하시니 너무 서운했다. 한층 낮아진 목소리 톤으로 그게 무슨 뜻이냐는 내 말에 아빠는 당황하시며 이런 말을 덧붙이셨다.


"나에게 너는 최고의 딸이라, 나는 네가 좀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


아빠는 내 딸이 좀 더 잘 됐으면 좋겠다는 의도였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그 말에는 본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딸의 인생에 대한 실망감과 아쉬움이 섞여있다는 걸 나는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이에 격렬한 반응으로 보답해드렸다.


"아빠한테 내가 최고의 딸일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나는 사회에서 결코 최고가 될 수 없고,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어. 아빠가 내게 그런 욕심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도 그렇게 말씀 드리는 것이 썩 즐거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앞으로 서로에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아빠가 나에게 말했던 '잘 산다'는 말에는 사회적인 지위, 경제적인 성공, 개인의 만족 뭐 이것저것 다 들어가 있었다. 정말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 가득한 '잘 산다'는 말과 그 높은 기준을 나는 아빠에게 들을 줄 몰랐다.


근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 역시 아무것도 몰랐을 때, 아빠가 내게 가지고 있던 '잘 산다'의 높고 많은 기준들을 내 스스로에게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죽어라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면 다 될 줄 알았고, 그 어떤 힘든 일도 강한 멘탈과 함께면 다 이겨낼 수 있을 줄 알았을 때의 나 또한 30대의 내 현재 프로필을 들으면 '중간치 정도다.' 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잘 사는 건 바라지도 않고, 그 기준을 한참 낮췄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기준과는 한참 멀게 느껴져서 내게 실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시간을 지나 이제는 함부로 누군가의 삶에 대해 '잘 사네, 못 사네' 라고 입을 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금 가 누리는 것들이 넘치게 감사한 것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군가 내게 '잘 사는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현재 누군가를 크게 질투하지 않고

양심의 감각이 살아있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좀 더 좋을 것 같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고

그걸 위해 무언가 하고 있고

크게 미워하는 사람이 없고, 미움을 크게 받지도 않고

크게 아픈 곳이 없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시간을 따로 떼어내서 쓸 수 있는 사람' 이라고.

     

'경제적인 부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이세요?' 라고 물어온다면 내가 겪어본 바 경제적인 여유가 없으면 누군가를 질투하지 않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비포선셋에 나오는 여주인공 셀린의 집을 보면서 '와, 이 사람 참 잘 산다'는 생각을 했었다.


비포선셋 - 셀린의 집


비포선셋 - 기타치는 셀린


남자 주인공에게 차를 권하며 찬장을 열었을 때의 많은 차 종류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음반 CD들, 그 옆에 빼곡히 붙어있는 추억이 담긴 사진들, 남자 주인공에게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불러주기 위해 꺼내던 기타를 보며 나는 그녀가 참 멋있게 잘 산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취향이 듬뿍 반영된 공간에서 좋아하는 것들에 시간을 따로 떼어내서 쓸 수 있는 사람.

물론 여주인공 셀린에게 잘 살고 있냐고 물었을 때, 그녀의 대답은 또 다를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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