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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Mar 24. 2023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들, 그럼에도 여전히

자유, 책임, 타협

어느 일요일 오후 4시, 감지 않은 머리를 질끈 묶고, 트레이닝복 바람에 슬리퍼 질질 끌고 나와 근처 슈퍼에 갔다. 콜라 찜닭을 해먹으려고 펩시 콜라 1.5리터 1병을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때 혼자 그랬다.


'어, 나 지금 되게 어른 같다!'


어릴 때 콜라를 마실 수 있는 날은 가족끼리 치킨이나 햄버거를 시켜 먹을 때 뿐이었으니까. 엄마는 나나 동생이 탄산음료 마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엄마 허락 없이 이 큰 콜라 한 병을 샀다는 것도, 저녁이 가까워질 시간까지 집에서 혼자 빈둥거려도 그 누구에게도 잔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것도,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내가 요리를 한다는 것도. 모두 '와, 나 어른이었구나!' 하는 내 새삼스러운 자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성인이 된지 무려 16년차에 접어드는데, 여전히 이런 자각이 내게 찾아오는 순간들이 있다. 집에 돌아와 찜닭을 하며 나는 또 어떤 순간들에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나 잠시 생각해봤다.


더 이상 친구들과 김밥천국에서 만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치맥을 하게 됐을 때도 조금은 그랬고, 기껏해야 학교 앞에서 만나던 친구들과 꽤나 먼 서면 시내까지 나가서 만나고, 때론 찜질방에서 외박을 할 때도 조금은 '아, 나도 어른인가?' 했었다. 근데 20살 남짓 그 시절에는 성인의 타이틀을 갓 얻게 된 기분에 취해 그걸 계속 확인해보고자 '나도 어른인가?' 했던 것 같고, 스스로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던 순간들은 어른들의 세계, 어른들만의 영역이라 생각하던 것들을 경험하고 그게 아무렇지 않게 이미 일상에 스며들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였다.


사진: Unsplash의Mayur


고등학생 때만 해도 맛도 없이 쓴 아메리카노를 왜 비싼 돈을 주고 마시나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아메리카노가 칼로리가 제일 낮으니까, 이게 카페에서는 제일 싸니까.' 하며 스스로 이유를 만들어 아메리카노를 찾아 마시는 나를 발견했을 때, 월요일 출근길 아침에 잠을 깨기 위해 아메리카노를 치트키로 쓰게 되었을 때도 '아, 나 어른 다 됐네!' 했었다.


첫 월급을 받고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을 때, 서점에서 재테크 코너를 조금씩 기웃거리기 시작할 때도, 어느 은행이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주나 인터넷을 뒤지고 그렇게 찾은 저축은행에다 부은 적금이 1년 만기가 되었을 때도 '나 어른 다 됐네!' 했었다.


인류가 어떻게 종족 번식을 해왔는지 몸소 알게 됐던 날도 왠지 모를 묘한 설렘과 함께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난 어른들의 비밀을 이제 알아버렸어.'




친구 꾸꾸와 당시 남자친구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넌 어떤 순간에 네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어?'


꾸꾸는 '내일 아파서 출근 못하면 내 비자랑 월세는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던 때부터 어른은 이런거구나 했다고 했고, 남자친구는 혼자 여행 다니며 갈 곳을 정하는 것과 숙소 예약을 하면서부터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다 했다.


나와 내 주변을 보니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은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사진: Unsplash의Krisjanis Mezulis


첫 번째는 어른으로서의 자유를 만끽할 때. 그 동안 나이가 가로막았던 것들을 이제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을 때가 그랬다. 술도 연애도 커피도 여행도 그 예가 되었다.


두 번째는 독립된 한 사람으로 오롯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책임의 무게를 알게 되었을 때. 여기서 더 나아가 나 말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더 생겼을 때도 우리는 절실하게 어른이 되었음을 느꼈다.


세 번째는 현실과 타협해야 할 때. 평생 여행만 하며 자유롭게 배낭여행자로 살겠다고 했던 한 친구는 여행사 취직으로 목표를 바꾸게 되었을 때 나도 어른이 되었구나 싶었다 했다.


어른으로서의 자유, 책임, 타협. 이 세가지 키워드는 어른이 된 우리의 일상에 공존하기도 하지만 대게는 이 순서로 우리를 찾아오는 것 같다. 가장 먼저, 금지되었던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고, 그 다음으로 책임의 무게를 배우게 되고, 타협의 단계로 들어서는게 아닌가. (물론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거나 그 순서가 뒤바뀐 사람들이 있기도 하겠지만.) 어른 그 안에서도 뭔가 단계가 나눠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분명 16년차 어른임에도 문득 '나, 어른이었네?' 하는 자각이 새삼스러운 이유는 아마도 내가 아직 완전한 어른이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누군가 '왜 아직 스스로 완전한 어른은 아니라 생각하나요?' 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왠지 타협의 단계 그 너머에 뭔가가 더 남아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 같다.


고작 16년차라 좀 더 살아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 어른의 영역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나 어른이구나!' 하는 자각은 계속해서 나를 찾아올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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