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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Jun 05. 2023

열심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

사람마다 어떤 메시지에 꽂히는 시기는 다 달라서

뉴질랜드에서 회사를 다닐 때였다. 내 사수가 일을 그만두면서 일이 급격히 많아졌던 때가 있었다. 회사에서는 대체 인력을 뽑으려고는 하는데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해서 기존 직원들끼리 일을 나눠 해야 했다. 근데 아무래도 내 파트 사수가 빠진거다 보니까 내가 많이 바빠졌다. 당장 해야할 일이 많은데도 그 위에 매일 새로운 일이 쌓여가는 건 또 보기 싫어서 빨리 해치우겠다고 한나절은 족히 걸릴 일을 반나절에 끝내며 정신 없이 일했다.


확실히 무리를 했던 것 같다. 어깨와 손가락이 아픈데도 오늘 일을 다 해치우겠다는 마음만이 앞섰다. 예상보다 빨리 끝내면 잠깐의 희열은 분명 있으니까. 어쩌면 그 희열에 중독된 사람처럼 정신 없이 일하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며 '마지막으로 사장님께 보낸 이메일에 그 문구를 괜히 썼나, 다른 걸 쓸걸 그랬나?' 하는 나를 보다 그랬다. '나, 또 시작이네.'

     

사진: Unsplash의Andrew Neel


어릴 때부터 난 주어진 일은 성실히, 열심히 하는 사람이긴 했다. 근데 뭐랄까, 나한테 해로울 만큼 열심을 불태우는 것은 살면서 만들어진 기질인 것 같다. 대학 때 뮤지컬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한 학생이 자신이 준비해온 연기를 앞에서 보여주고, 조교는 그 연기에 대해 좋지 않은 피드백을 건넸다. 그 학생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했고, 조교는 '열심히는 다 해, 잘하는게 중요하지.' 라고 했다.


‘열다잘중’을 인생 처음 듣던 때였다. 그 이후로도 사회생활 하면서 그말 종종 들었다. 취업 준비할 때는 내가 나에게 그 말을 하며 나를 채찍질 하기도 했다. '살아 남으려면 잘해야 한다!' 어느덧 체화가 된 이 말 '열심히는 다들 하니까 잘하는게 중요하다.' 이 말이 나를 조금씩 갉아먹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마음과 몸이 아프고부터였다.


'난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라는 말을 내게 해본 적이 없다. 열심히는 당연한거기 때문에 논할 바가 아니었고, 그래서 결과물이 완벽한지가 중요했다. 열심의 가치는 평가절하 되었고, 모든건 결과로만 얘기하려고 했다. 그러니 일을 하면서도 실수나 피드백에 민감하고 그건 또 다른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었다. 나에게 완벽주의적 기질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당시에는 결과물이 중요하다는 세상의 메시지가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내 기질로 커버할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했을테니.


근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무리를 해서 아픈 어깨와 손가락을 계속 만지면서도 이미 보내버린 이메일의 아주 작은 부분을 집에와서도 혼자 곱씹는 나를 보며 이제는 이러는거 그만하자고 했다.


사진: Unsplash의Laura Chouette


사람마다 어떤 메시지에 꽂히는 시기가 다 다른 것 같다. 그러니 20대에는 잘하는게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을 진리처럼 받들어모셨다. 뭐 이 말 뿐이었겠는가. 흔히 독설이라고 하는 것들을 일부러 찾아 들었다. 그때는 사회가 문제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게 내 상황을 개선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가 어찌됐든 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그런 독한 말들로 나를 무장시키려 했었다. 근데 몸이 아프고 마음이 지쳤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요즘은 가늘고 길게, 지속가능한 삶을 원한다. 그래서 아마 10년만에 그만 좀 나를 태워버리자 했던 모양이다. 근데 아픈게 나 혼자만의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취업준비 할 때만 해도 당시의 트렌드였던 힐링의 연장선상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와 같은 책이 잘 팔리던 때였다. 그리고 이 책들이 당시 사회에 대한 고찰이 없었다는 비판을 받으며 물러나고 한동안은 또 독설이 유행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때는 그런 독한 말들을 들을만큼의 여력은 있었던 것 같다.

 

근데 5년 전쯤부터는 다들 너무 지치고 힘든지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 처럼 죽고싶다는 말이 책 제목으로 등장하는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됐다.


그 날 친구들의 카톡 방에서 내일 출근하기 싫다는 한 친구의 이야기에 나는 무슨일이 있냐고 했고, 무슨 일이 있다기 보다는 그냥 귀찮다고. 그 말에 다른 친구는 여기서 더 열심히 하려면 돈을 더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우리 제발 받는 만큼 일하자는 얘기를 했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 못지 않게 지치지 않는게 너무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됐다. 부디 우리부터 챙기고, 돌보고, 건강하게 존재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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