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맨디 Apr 22. 2023

성공과 실패, 그 선이 분명한 일들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

2021년 4월 5일, 내 33번째 생일에 친한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언니 생일 축하해요, 오늘 생일인데 뭐해요?' 난 '별거 없이 보낼 것 같지만 요즘은 매일이 생일 같아서 별거 없는 생일도 아주 좋다.'라고 답장 했다. 동생은 그 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왜 요즘은 매일이 생일 같다고 느끼는건지 나를 한번 돌아봤다.


2019년 생일만해도 생일마저도 지옥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나를 이끌고 한 호텔을 찾았었다. 당시에 나는 뉴질랜드 영주권이 승인이 될지, 기각이 될지 이민성의 결정을 1년째 기다려오고 있었다. 지난 시간의 노력과 고생을 생각하며 그 일이 꼭 성공으로 마무리 되어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나는 똘똘 뭉쳐있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의 다른 이름은 무서울만큼의 강박이었다. 어떤 일이 꼭 내가 원하는대로 흘러가야 한다는 강박. 그게 날 너무 힘들게 했지만 달리 떨쳐낼 방법이 없어서 괴로워 하던 때였다.

     

그날의 나를 생각해보니 2년이 흐른 2021년은 하루하루가 가볍기 그지 없었다. 내 하루가 가벼워진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아마 그 중 하나는 나를 괴롭히던 그 강박과 멀어진데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어떤 일이 꼭 성공으로 마무리지어져야 한다거나, 꼭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는 강박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가볍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진: Unsplash의Wyron A


내가 앞으로도 간절해지지 않기를, 그래서 고작 '나'라는 한 사람이 우주 전체를 움직일 힘을 발휘해야 해서

역설적으로 나의 무력감만 확인하는 일과는 멀어지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내 바람과는 달리 우리는 살면서 불가피하게 성공과 실패, 그 선이 분명한 일들을 만난다. 시험 합격/불합격, 취직 성공/실패, 영주권 승인/기각, 사업의 성공/실패 등. 우리가 한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서, 생존을 위해서 필수로 거쳐야하는 관문들이 있다.


그리고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도 그 선이 분명한 일을 만나기도 한다. 사랑하는 가족의 수술의 성패여부처럼.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또 다시 아주 간절해 질 것이고 어떻게든 그 일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도록 두 팔 걷어부치고 달려들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렇게 불가피하게 만나야 하는 일들을 빼고서는 굳이 성공과 실패의 선이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내 스스로 간절해지지는 말아야겠다는 내 다짐인지도 모르겠다.


사진: Unsplash의Sugarman Joe


목동의 한 영어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학원 자체내에서 치른 시험을 가지고 한 어머니와 상담을 하는데 그 어머님이 그러시더라. '선생님, 학원 제일 높은 반에 가야 고등학교 가서도 편하게 따라간다던데 이번 시험에 우리 아이가 그 반에 올라가지 못하면 앞으로 우리 애는 어떡하죠?' 학원 시험에도 성공과 실패의 선이 존재하고 누군가는 아주 간절해보였다. 대학도 그냥 합격/불합격의 선만 존재하지 않고 '인서울은 해야 성공이다.',  '아니다,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 적어도 스카이는 나와야 된다.' 어느 회사를 다니느냐를 두고도, 어느 동네에 사느냐를 두고도 몇 살에 어느 정도의 재산이 있느냐를 두고도 성공과 실패의 선이 촘촘하게 존재하는 나라가 있다.


그 선을 넘기 위해 과거에도 간절했고 현재도 간절한데 왠지 앞으로도 간절해야할 것 같은 그 곳과 멀어져서, 그래서 굳이 불필요한 강박과 함께 하지 않아도 되어, 어쩌면 그래서 33번째 생일에 나는 일상이 좀 더 편해졌다고 느꼈던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내게 '그 선이 촘촘한 곳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 촘촘한 선들을 초월한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고, 그를 존중하기 시작하면 그 선들이 좀 흐려질 것 같다고 말할 것 같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 촘촘한 선들을 넘어왔으나 결국 사회적으로 큰 보상이 없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가기 시작하면, 그 선들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지금 간절하게 피할 수 없는 한 관문을 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게 얼마나 힘든건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조금만 더 힘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전 13화 내가 믿고 있는, 믿고 싶은 한 가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