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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May 04. 2023

21살의 나쁜 남자

내가 조금 컸구나, 연애면에서

뉴질랜드 남섬을 여행하며 머물던 숙소에서 한 대만 친구를 알게 됐다. 그리고 며칠 뒤 다른 숙소에서 이 친구를 또 만나게 됐다.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그때는 저녁을 같이 먹자고 내가 제안했다. 그 친구는 20대 초반이었고, 연애는 해본 적이 없고, 한국드라마를 좋아한다고 했다. 송중기의 이름을 말하면서 활짝피던 그 얼굴에서 나는 진짜 사랑을 봤다.


난 그녀를 보며 과거의 나를 보는  같았다. 문득 한국 드라마가 내 연애를 포함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의 연애를 이제껏 망쳐오고 있었는지에 대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심도있게 조사해봐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대만 친구에게 불발로 그쳤던 내 20대 초반의 썸의 한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당시 나의 썸남은 같이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밤에 통화도 하는데, 끝내 고백을 안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아닌가보다 했다고.


그랬더니 그 친구는 잘했다고,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에게는 꼭 고백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그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


사진: Unsplash의Christopher Beloch


지나온 연애사를 돌이켜 생각해보다 그럴 때가 있었다.


'걔는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선수였어.'

'그 오빠는 나를 너무 헷갈리게 했어.'

'좋아하면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던데, 그게 다 그 남자가 마음이 부족해서였던거야.'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 생각이 좀 달라졌다.


'주변 사람들이 쟤는 절대 아니라고 다 말렸던 선수는 그래봤자 고작 21살이었겠구나.'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통화도 하는 여자애가 어떨 때는 다정했다, 어떨 때는 차가웠다,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는 통에 그 복학생 오빠도 지쳐서 소리없이 사라졌겠구나.'

 

그 남자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도 그 사람도 경험이 부족해서였다. 달라진 내 생각을 알아차렸을 때 알았다.


'내가 조금 컸구나, 연애면에서.'




20대 초반에는 ‘그냥 만나, 막 만나야 돼! 젊어서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봐야해!’ 이런 말을 되게 싫어했었다. 또 싫어했던게 밀당, 갑을관계 뭐 이런것도 되게 싫어했다. 내 맘에 쏙 드는 사람 한 명을 만나서 주고 받는 계산 없는 그런 드라마같은 사랑을 꿈꿨다. 그러면서도 조금 앞서 나가는 친구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연애 지식은 늘어나는데 때론 많아진 지식과 잘못된 믿음이 걸림돌이 되기도 하며 실전은 늘 꽝이었다. 근데 지금은 나도 똑같이 얘기한다. ‘많이 많이 만나봐야해!’


그러면서 아는 것 같다. '내가 그래도 그때보다는 컸구나.' 하고.


사진: Unsplash의Dan Musat


연애의 시작부터 헤어짐을 겪고 그 터널을 다 나오는 걸 하고 봤더니 연애의 시작은 책으로 치면 에필로그 정도인 것 같아서 이제는 굳이 거기서 너무 힘빼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사귀기 전 그 사람과 사귀고 난 후의 그 사람은 전혀 딴판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게 꼭 나쁜게 아니기 때문에 겪어봐야 상대도 알고, 나도 알아가게 되는거라면 많이 많이 만나보라고 말은 하는데, 과연 요즘 나는 그 말을 잘 지키고 있는건지는 모르겠다.


21살의 나쁜남자, 그때는 나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만나보지 않았던 그 남자는 나쁘지 않은 남자, 괜찮은 남자였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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