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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Apr 05. 2023

좋아하는 게 뭐냐는 질문에 대하여

아무것도 날 붙들어주지 못할 때

'당신은 뭘 좋아하나요?'


우리는 종종 이 질문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게 소개팅 자리일 수도 있고 면접장일 수도 있고 병원일 수도 있다. 소개팅 자리에서 받는 이 질문은 내 경우엔 그랬다. 그 상대방이 내 마음에 드냐 들지 않느냐에 따라 답변이 굉장히 유연해졌다. 사실은 아빠 따라서 어릴 적에 몇 번, 성인이 돼서는 한두 번 정도 가봤던 야구장인데도 내가 마음에 드는 상대가 야구를 좋아하는 것 같으면 나는 여름에 야구장에서 꼭 맥주 한 잔 해야 하는 사람처럼 나를 둔갑시키기도 했었다.


사진: Unsplash의Priscilla Du Preez


그러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 정말 심도 있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닫게 했던 날이 있었다. 어느 한의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한의사 선생님이 맥을 짚어주시다가 내게 몸이 안 좋은 건 둘째 치고, 지금 굉장히 스트레스가 많은 상태라 그게 더 걱정이 된다고 말씀을 하셨다. 당시엔 내심 '요즘은 예전에 비하면 정말 좋은 때를 사는 건데 왜 저런 말씀을 하시지?' 했었다. 그 다음에 방문했을 때도 선생님은 비슷한 얘기를 내게 전하셨다. 그래서 여쭤봤다.


"제 선에서 제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그랬더니 선생님은 넌지시 말씀 하셨다.


"좋아하는 걸 하셔야죠. 걷는 게 좋으면 걷고, 음악 듣는 게 좋으면 음악도 듣고... 뭘 좋아하세요?"

 

갑자기 받은 질문에 정말 절실하게 생각하게 되더라. '나 뭘 좋아하더라? 내가 그걸 하면 건강해진다는데 나 뭘 할 때 내가 좋아하더라?' 잠깐의 적막이 흐르고 나는 대답했다.


"선생님, 우는 것도 도움이 될까요?" 


좋아하는 게 뭐냐는 질문에 우는 게 도움이 되냐는 이 말도 안 되는 대화를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나도 인식하지 못했지만 상태가 안 좋긴 했나 보다 싶다.

 



얼마 전 '불안의 서'라는 책을 보다가 가슴에 꽂히는 한 문장을 만났다.

'모든 것이 나를 옭아매지만 아무것도 나를 붙들어주지는 못한다.'

     

나는 참 좋은 문장을 만나면 순간적으로 아득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 문장을 아득한 기분으로 몇 번 곱씹어 보며 나는 어떤 넝쿨에 온몸이 휘감겨져서 공중에 떠 있는 한 사람을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를 옭아매는 많은 것에 고통스럽고, 붙들어주는 것이 없는 듯한 세상에서 방황한다. 그러다 혼자 그랬다. '모든 게 나를 옭아내면서도 붙들어주지 못하는 세상일지라도, 내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이 땅에 뿌리 내릴 수 있게 하는 게 있지 않을까?' 그러다 찾은 것 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사진: Unsplash의Blaz Photo

 

단조롭고 지루했던 오늘 하루가 별 의미 없이 지나가더라도 잠시 수영을 하는 순간만큼은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내가 가끔 있고, 아주 가끔 아득해지는 문장을 만날 때면 계속 그런 문장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내가 있다. 나를 옭아매기만 하는 듯한 세상에서 그래도 여전히 사는 일은 즐겁다는 감각을 내가 놓지 않게 해주는 것들이 바로 그런 순간들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바쁘다는 이유로 후 순위로 밀려났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때로는 나를 살리기도 하고, 내 하루를 이어가게 하는 위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나를 붙들어주지 못할 때, 그럼에도 나는 세상을 붙들어야 할 때 절실해질 수도 있는 질문이다.


'당신은 뭘 좋아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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