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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네 Choi May 07. 2024

당신의 똥조차도 누군가에게 의미가 된다면

더럽게 희망적인 글을 쓴 이유 1


집 근처 음식점에 갔다가 급똥이 마려운 아들을 데리고 화장실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거기엔 누군가 먼저 남겨 놓은 굵은 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굵던지 변기는 막혀 있었고, 할 수 없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체육센터 화장실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따라 센터가 휴관이라 문이 닫혀 있더군요. 제때 볼일을 못 본 아이의 온갖 짜증을 받아내며 세 번째 시도 끝에야 급똥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즐거웠던 외식 시간이 고작 누군가가 남겨 놓은 똥 때문에 이렇게 망가지다니. 정말 똥 같은 상황이네.'


누군지 모를 그 똥의 주인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면서 짜증이 확 올라오려던 차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지, 사실 그 똥이 문제인 건 아니잖아?'


가족과의 시간이 겨우 누군가의 똥으로 나빠질지, 아니면 그저 웃고 지나갈 일이 될지는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수그러들었습니다.


급똥을 해결하고 몸과 마음이 한결 편해진 아들과 함께 우리 부자의 마음을 상하게 했던 좀 전의 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들, 근데 아까 그 똥 진짜 굵지 않았어? 아빠는 깜짝 놀랐어."


"응 아빠, 근데 코뿔소 똥만큼은 아니야. 그리고 약간 황금똥이었어."


씨익 웃는 아들은 눈치챘던 것일까요, 더럽고 어렵지만 언제든 희망적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비밀을 말입니다.  


집에 돌아와 그날 낮에 봤던 똥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보니, 인생에 대해서 말하기는 버겁지만 적어도 똥에 대해서라면 느낀 점 정도는 가볍게 얘기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자기 검열에 빠져 글쓰기에 진전이 없던 터라 마치 한 줄기 빛을 본 듯했습니다.


어디에나 있고 누구에게나 있는 똥에 대해서 글을 쓴다면, 저의 글이 아무리 똥글이라도 누군가는 읽고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가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일단 쓰기로 했습니다.


인생은 참 오묘합니다.

그 똥 주인은 자신이 싼 똥이 누군가에게 책 한 권을 써낼 만큼의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요?


안도현 시인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고 했죠.

똥도 함부로 더럽고 하찮다고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아주 작은 삶의 조각조차도 어떤 의미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당신의 삶은 충분히 가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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