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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네 Choi May 15. 2024

그 정도면 더럽게 희망적인 겁니다

더럽게 희망적인 글을 쓴 이유 2


이제껏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생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만남의 시간들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단연 사람들이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할 때입니다.

꿈을 이야기하면서도 더러는 희망적이었고 더러는 희망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실이 어렵고 고민되는 것들로 가득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완전히 희망을 버린 얼굴은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현실의 어려움들에 마음의 여유를 빼앗길 때마다 자신의 가치와 삶의 의미도 함께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저의 이야기를 통해서 모두가 알고 있는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 되짚어보고 싶었습니다.

때로는 턱 밑까지 숨이 차오르기도 하는, 당신이 똥 같다고 여기는 그 인생 이야기가 얼마나 특별하고 가치 있는지, 지금까지 잘 살아온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그리고 앞으로의 당신은 지금보다 얼마나 더 소중하게 될 존재인지를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당신이 저 같은 평범한 40대 아저씨에게 별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아저씨의 똥에 대해서는 정말 더더욱 알고 싶지 않겠지요. 그건 피차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당신의 똥, 정말로 안물안궁입니다.

그러나 똥이 말해주는 것이 우리 삶의 태도와 본질에 관한 이야기라면 당신의 똥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왜 우리의 삶은 힘들고, 피하고 싶고, 정제되지 않고, 부끄럽고, 부족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고, 불확실하고, 불편하고, 어떤 날은 정말 똥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희망적일 수 있는 걸까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유한한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더럽게 희망적인 것은 기본값이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끝은 있지만 그렇다고 오늘 당장은 끝나지 않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이 올 거라는 전제 하에 오늘을 살아갑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오늘의 당신이 '스스로 선택해서 바꿀 수 있는 내일'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품고 살 수 있습니다.


너무 뻔한 결론인가요?

그런데 우리는 이 당연한 것을 종종 잊은 채 살아갑니다. 오늘과 다른 내일은 오지 않을 거라고 착각하기도 하고 어제와 오늘의 노력들이 가치 없게 느껴지기도 하죠.


저는 지난 3년 간 이것저것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며 잔뜩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똥 같은 상황들이 생겨났고, 똥 같은 생각들도 떠올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살아왔고 어느덧 나이 마흔이 넘었는데도 이룬 것도 가진 것도 없는 것 같고, 하루하루 닥친 일들을 처리하며 살아내기 급급하고, 그런 일상에 익숙해지기 싫었지만 꿈을 위해 뭔가를 더 하기가 이렇게 버거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다가 멈춰버리는 자신을 보면서 '역시 난 꾸준히 뭔가를 성실하게 못 하는 사람인가? 나 같은 사람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무슨 도움이나 되겠어?'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저에게는 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100억 부자가 되었다느니 하는 그런 극적인 인생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일상 너머의 뭔가를 꿈꾸고 도전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인생에 쓸모없고 가치 없는 책은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 조금 더 좋은 책이 있을 뿐이며, 결국 책의 가치는 읽는 사람의 태도에 달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기운이 빠져 있던 어느 날, 터벅터벅 길을 걷다가 오래전 읽었던 이 내용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래, 이 정도면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거야. 나도, 그리고 저기 보이는 저 사람도 성실하니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겠지'


물론, 누군가는 저보다 더 성실하겠지만, 그렇다고 제가 성실하지 않은 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이 있죠.

주로 어떤 일에 노력을 해도 성취나 보람이 없을 때 이 표현을 사용합니다. 인생의 의미를 담는 항아리가 있다면 아마도 밑 부분에 큰 구멍이 뚫린 항아리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겁니다.


살다 보면 원하거나 의도하지 않았는데 더럽고, 어렵고, 짜증나고, 밉고, 섭섭하고, 두렵고, 불편하고, 답답하고, 어색하고, 불분명하고, 속상하고, 허탈하고, 어찌할 수 없는, 정말 똥 같은 순간들이 종종 찾아오죠. 고이 담아 두었던 인생의 의미가 이런 부정적인 일들이 만들어내는 구멍을 통해 순식간에 빠져나가 버립니다.


삶의 의미를 담아 두는 그 항아리에는 도대체 얼마나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걸까요?


심리학자들이 '부정성 편향'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습니다.

심리학 연구들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사람들이 경험하는 모든 나쁜 것들이 거의 예외 없이 좋은 것들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발휘하더라는 겁니다. 부정적인 것의 힘은 너무나 강해서, 나쁜 일이 한 번 일어났다면 좋은 일이 적어도 네 번은 일어나야 그 나쁜 일이 우리 생각과 행동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상쇄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경험들을 떠올려보면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좋은 관계에서도 작은 오해로 인해 사이가 틀어지기도 합니다. 행복한 가정도 부부싸움을 한 날이면 삶이 무의미하게 여겨지기도 하고요. 열 번을 잘 해왔어도 한 번 못하면 비난이 쏟아지고, 그 한 번의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얘기해놓고 보니 인생의 의미 게임은 참 불공평하네요.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어쨌든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불공평한 게임에 계속 참여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오늘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그래도 그럭저럭 살만한 인생이라 믿어 왔다는 것이겠죠.


그러니 엄청나게 희망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더라도, 사실은 그 정도면 더럽게 희망적인 겁니다.



희망에 대해서 좀 더 얘기를 해볼까요?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돌이켜보면,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붓다 보면 언젠가 물이 가득 차서 넘치는 순간이 오기도 했습니다.

물이 차서 넘치기 전까지는 항아리에 물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희망은 이와 같아서, 지금 당신과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죠.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닙니다.

물이 차올라 넘치기 시작하는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어두운 항아리 안에 있어 느껴지지 않았지만 희망은 항상 있어 왔고, 그것이 결국 밑 빠진 독을 채우고도 넘칠 만큼 큰 의미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말입니다.

똥 같은 현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희망이지만, 그것을 끝내 버리지 않는 사람에게 인생이 가끔씩 "옛다, 수고했어." 하며 무심코 던져 주는 선물이랄까요. 이렇게 놓고 보면 삶의 의미 게임이 꽤 공평한 것 같기도 합니다.


당신이 지금 그 자체로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이고 대견한 존재인지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앞날에 얼마나 더 멋진 일들이 벌어질지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으면 합니다.


우리 인생은 부정성 편향을 이겨낼 만큼 엄청나게 희망적인 것이 기본값입니다.


더럽지만 희망적인, 그래서 더럽게 희망적일 수밖에 없는 오늘 하루를 보내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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