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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네 Choi Jul 10. 2024

똥줄이 탈 때는 선을 그어 봅니다

결과를 받아들이는 마음 선택하기


세상에는 내 의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바닥을 치는 경험이 좌절과 낙담의 정서라면, 똥줄이 타는 마음은 불안과 초조의 정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지고 있던 것들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더욱 마음이 어렵습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 졸이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에 있을 때 결혼을 했고 첫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후 비록 1년짜리 계약직이지만, 박사 유학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드디어 미국 동부 한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경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계약할 당시에는 1년 더 연장이 가능해 그 학교에 2년 동안 근무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미국 시골 유학생을 따라 한국에서 온 아내는 고생 끝에 우리도 이런 멋진 도시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상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한 번씩 근처 휴양도시 뉴포트에 들러 랍스터 샌드위치를 먹으며 부드러운 바닷바람을 맞으면 마음이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었지요.


그러나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생활이 안정되어 갈 즈음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약 만료 2달 전인 3월 말에 학교 상황이 바뀌어 계약 연장이 불가하다는 메일이 온 것입니다.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기한 내 다른 직장을 찾지 못하면 계약 만료가 되는 5월 이후에는 이민법상 불법체류가 되기에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메일을 받은 날 아내에게 바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다음 날, 빅뉴스를 전하기도 전에 또 다른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내가 상기된 얼굴로 두 줄이 새겨진 임신테스트기를 보여주었던 것이지요. 우리 부부는 10개월 뒤면 태어날 둘째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명은 한껏 부푼 마음으로, 다른 한 명은 한없이 복잡한 마음으로.


마냥 긍정적인 제 삶이 너무 쉬워 보였던 걸까요? 인생이 삶의 난이도를 급격히 올려놓는 것만 같았습니다.

 '두 살배기 아이와 올해 태어날 갓난쟁이 아이... 얘들과 어디서 뭘 먹고살지?'


그날부터 미국 전역뿐 아니라 전 세계 심리학과 교수 채용 공고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수십 군데 지원서를 넣고 그중 몇 군데에서 전화 인터뷰를 하고 캠퍼스에 방문해 면접을 보고, 그러는 동안 두 달이라는 시간이 무섭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운전면허증도 갱신되지 않아 곧 발이 묶이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었습니다. 조여 오는 현실의 압박에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자 똥줄이 타고 입술마저 바짝 타들어갔습니다. 기도가 저절로 나왔죠. 


따뜻했던 어느 봄날, 출근하는 차 안에서 운전대를 꼭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제발 지원한 대학에 합격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퇴근하는 길에는 문득 그렇게 펑펑 울며 기도를 한 제가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할 때 '어찌할 수 없는 것 같은 문제를 만났을 때는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제삼자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라'라고 얘기해 왔지만 정작 제 문제에 대해서는 평정심을 잃고 문제에 갇혀 허우적대고 있는 꼴이 우스웠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한 발짝 물러나 상황을 바라보니, 합격하게 해 달라는 제 기도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해야 했던 기도는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평안이었습니다.


기도를 바꾸자 여유를 되찾았고, 입덧으로 한창 고생하고 있는 아내와 함께 미국에서의 마지막 일상이 될지도 모를 날들을 겸허한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했기에, 기다림만이 필요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기도를 바꾸지 않았다면 아마도 결과가 나오는 순간까지도 마음을 졸이고 있었겠지요. 그리고 만약 원치 않는 결과가 나왔다면 삶과 신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간절했던 마음, 캄캄한 어둠 속에서 사라졌던 여유를 되찾아 준 작은 단서, 그리고 그 후 찾아온 평온함은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을 때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똥줄이 탈 때는 시야가 좁아집니다. 눈앞의 문제가, 그리고 곧 벌어질 결과가 전부인 것처럼 다가오지요. 그러니 의식적으로 눈을 더 크게 떠야 합니다. 눈을 부릅뜨고 마음속에 선을 하나 그어봅니다. 선의 한쪽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한쪽에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적어 넣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여유를 되찾게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이미 최선을 다 했다면 내가 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해서 마음 졸일 필요가 없어집니다. 종종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야속하고 치사한 것이 인생이지만, 적어도 결과를 받아들이는 마음만큼은 당신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시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변화시킬 용기를 주시고,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 라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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