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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네 Choi Jul 10. 2024

똥만큼 창의적일 용기


중학교 1학년 때 학교 시화전이 열렸습니다. 저는 이순신 장군의 시조 <한산섬 달밝은 밤에>에 어울리는 수루와 보름달, 그리고 밤바다를 바라보는 이순신 장군을 그렸습니다. 미술 선생님은 제 그림이 좋다며 칭찬하셨고 이제 시조 글귀만 적어 넣으면 시화전에 낼 작품이 완성되는 단계였습니다.


교정에 작품을 전시하는 날이 되었고, 장난기가 많았던 저는 생애 첫 시화전을 위한 조용한 반전을 준비했습니다. 제 그림 위에는 이순신 장군의 시조가 아닌, 누군가가 패러디한 똥 시조를 찾아서 적어 넣었지요.


한산섬 달밝은 밤에 화장실에 홀로 앉아
신문지 옆에 끼고 아랫배에 힘을 주니
뿌지직하는 소리에 내 똥인가 하노라

 

지금 생각하면 믿었던 모범생 반장 학생의 어이없는 작품을 보면서 미술 선생님의 마음이 어땠을지 이해가 됩니다만,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저에게는 남들과 다른 특별함이 중요했습니다. 당연히 미술 선생님은 기막혀했고, 응당한 벌을 내렸습니다. 얼마간의 정신교육 후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교무실 앞에서 쉬는 시간마다 제 작품이 잘 보이게 두 손으로 들고 서 있는 벌이었습니다. 창피함을 좀 느껴보라는 의도였겠으나, 저는 오히려 제 그림 앞에서 키득거리는 학생들을 보며 용기 낸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뿌듯합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고,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관심을 끌고 그들에게 평가받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창의성 연구에 보면, 사람들은 창의적 활동을 하고 난 뒤 죄책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우리가 창의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문화가 정해 놓은 규칙들과 관습들을 벗어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문화가 만들어 놓은 안전한 방 밖으로 나가서 잘 정의되지 않은 것들과 마주하는 일은 마음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창의성은 도전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프랑스 미술가 마르셀 뒤샹은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변기 하나를 기존 미술계에 던져 넣으며 미술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자신의 똥을 통조림 통에 넣고 작품이라고 우겼던 피에로 만초니의 똥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었지만 지금은 수 억 원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두려움이 앞섰을 것입니다.


시화전 전날 밤, 열세 살의 소년에게도 이순신 장군의 시조를 있는 그대로 적을지 똥 시조를 적을지를 놓고 고민했던 순간이 있습니다. 30여 년이 흘러 <더럽게 희망적인 에세이>를 쓰는 지금 이 순간도 그러합니다. 글을 모아놓고 보니 제목부터 정말 더럽습니다. 똥 이야기 가득한 이 똥글을 누가 읽어줄까,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는 글이 될까 의심이 드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똥만큼 창의적일 용기가 있기에 계속 씁니다. 똥 시조를 시화전에 내걸었던 그때나 이 부족한 글을 세상에 내어 놓는 지금이나 제게 필요한 용기의 크기는 같습니다. 일단 저지르고 보면 이 모든 것들이 그렇게 두려워할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죠.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고작 똥글을 썼다고 부끄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은 응원을 받을 일이죠.


당신의 일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그러나 두려움을 주는 일은 무엇인가요? 한번 용기를 내서 당신의 삶에 창의성을 초대해 보세요. 지금은 두렵겠지만, 당신이 초대한 창의성이 당신의 일상을 야무지게 변화시켜 나갈 겁니다. 뒷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의 모든 역량이 변화를 지지해 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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