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소에서 봉사를 하다보면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탈출에 성공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차라리 지옥같은 보호소에 사는 것보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는 편이 더 좋을 듯 싶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아이들이 케이지에서 탈출을 해도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탈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보호소를 떠나는 아이들은 극히 일부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보호소 주변을 멤돌며 지내게 된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사료와 물을 몰래 챙겨주고 있지만 보호소 관리 직원은 그 아이들을 다시 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다시 잡히면 바로 안락사를 시킨다.
전복이를 입양하겠다고 하자 “아~ 그 탈옥범이요? 데려가세요~”라고 했다. 장난이라도 목숨걸고 탈출하는 아이들을 그렇게 불러서는 안된다.
어느 날 너무 얌전해서 눈에 밟히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형제로 보이는 똑같이 생긴 아이와 심하게 공격적인 다른 아이 이렇게 셋이 같이 합사되어 있었다. 두 형제는 공격적인 아이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고 그 모습이 항상 불안해 보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아이를 입양할 수 없는 나는 그 광경을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따름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찾은 보호소에서 얌전한 아이가 탈출에 성공해서 보호소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죽을 힘을 다해서 빠져나왔음을 알기에 기쁘기도 했지만 잡히면 죽을 수도 있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그 아이가 멀리멀리 자유를 찾아서 떠났으면 했지만 3일 뒤에 찾은 보호소에서 그 아이는 다시 잡혀서 독방에 가둬져 있었다. 그 아이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고 있는 나는 가슴이 무너졌다.
나에게 메달리던 후복이는 이제 내가 아닌 장난감과 친구들에 더 관심이 많다. 전복이보다 더 독립적인 아이였다.
다른 형제가 있는 케이지를 청소하러 들어갔다가 청소를 끝마치고 나오려고 하는데, 공격적인 아이에게 기가 죽어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뛰어나와 내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 아이를 떼어내려고 하는 순간 그 간절한 눈빛을 보고야 말았다. 그 눈빛을 보고 그냥 돌아설 수 있을 만큼 내 심장은 단단하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또 결심하고 말았다. 이 형제 둘을 데리고 가야겠다고... 이 아이들에게 더 이상 공포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이곳에서 영원히 탈출할 수 있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전복이(탈출한 아이)와 후복이(메달린 아이)를 데리고 나는 보호소를 빠져나왔다.
신이 나서 이리 뛰고 저리 달리던 아이 둘이 마주치자 시원하게 장난 한판을 하고 있다. 이 자유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게 지켜줄 것이다.
전복이와 후복이를 데려오면서 보니 이쁜 여자아이들이었다. 이제 막 1살 정도 되어 보였다. 전, 후복이는 무사히 내 방으로 옮겨져서 며칠의 격리기간을 마치고 성공적으로 무리에 섞였다. 같은 배에서 나온 애들을 함께 데리고 오면 그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잘 놀아서 특별히 신경 쓸게 없다. 전복이와 후복이도 서로 의지하며 다른 애들에 비해 빨리 적응해 나갔다. 처음 산책을 한 날 전, 후복이는 너무 신이 나서 날아다녔다. 서로 장난을 치기도 하고 전력질주를 해보기도 하고 처음 맛보는 완벽한 자유을 얼마나 기쁘게 맞아들이는지 내가 다 가슴이 벅찼다. 요즘에는 전, 후복이가 장난을 시작하면 예복이, 꽃복이도 합세해서 같이 장난을 치고는 한다.
천사처럼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자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평화로워보여 나도 그 옆에 눕고 싶어진다.
전, 후복이는 잘때도 늘 함께였다. 한 마리가 자리를 잡고 먼저 자고 있으면 다른 아이가 와서 그 옆에 찰싹 붙어서 잠이 든다. 그 무서운 곳에 둘이 끌려와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버텼을 생각을 하니 이들의 끈끈한 우정이 이해가 갔다. 이제는 그곳에서의 나쁜 기억은 지우고 여기서 만끽하는 자유와 사랑만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고 있는 전, 후복이를 가만히 쓰다듬어 준다. 평소에는 장난꾸러기 사고뭉치들이지만 잘때는 천사가 따로 없다. 그 평온한 얼굴에 나는 그저 안심이 된다. 말썽을 부려도 되니 그저 즐겁고 행복하기만 바랄뿐이다.
앞에서 자고 있는 아이 둘도 이번에 보호소에서 함께 온 아이들이다. 전,후복이처럼 이 둘도 같이 의지하고 잘때가 많다.
보호소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아이들은 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보호소의 시설이 열악하다는 반증이다. 이런 아이들을 단순히 말을 듣지 않는 문제견으로 치부되어 죽음에 이르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자유를 원한다.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살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타나는 행동이다. 그게 오히려 죽어야 될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모든 아이들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어쩔때는 지옥같은 삶보다 죽음이 나을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전, 후복이는 살리고 싶었다. 그 아이는 살려고, 살기 위해 도망쳤을 뿐이었다. 그 끝이 오히려 죽음을 의미한다고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살기 위해 나한테 메달리는 후복이의 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또 2마리의 개가 늘어났다. 이런....^^
지금처럼 친구들과 함께 매일 산책을 하며, 매일 맛난 밥을 먹고, 둘이 함께 따뜻한 곳에서 잠이 들게... 그렇게 오래 함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