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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영 Feb 24. 2021

봄이 오고 있는 복이네 집

나에게는 책상이 2개 있다. 책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이것 저것 작업을 동시에 하다보니 항상 책상 위는 어지럽게 이 책 저 책이 쌓여 있다. 결국 책상을 하나 더 구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특히 겨울에는 책상 대신 화목난로 앞에 있는 간이 테이블에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해서 아예 거기에 책상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거실 책상에 앉으면 책상 주위에 몰려든 아이들은 서로 자리를 잡느라 분주하다. 내 발치에는 해복이와 소복이가 자리를 잡았고 책상 옆 방석에는 바둑이가 자리를 잡았다. 물론 내 무릎 위에는 다복이가 꽈리를 틀고 있다. 내방을 비집고 들어온 눈복이는 덥다고 현관에 대자로 뻗어있다.      

     

도무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으면 이렇게 심령사진이 나온다. 매일 뭐가 그렇게 신이 날까? 이쁜이들이다.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우리 집은 갑자기 이불과 방석 부자가 되었다. 온기라고는 전혀 없는 곳에서 너무나 불쾌적하게 살아온 아이들이었음에도 모두 방석 위나 이불 위에서 자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집에는 품종견보다 혼종견이 앞도적으로 많이 있음에도 모두 침대를 찾고 이불과 방석을 찾는 걸 보면 마음이 조금 아프기도 한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푹신한 곳에서 편히 쉬고 싶을텐데 내가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나의 아이들을 돌보고, 돈도 벌고, 봉사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진순이가 아기처럼 자고 있다. 자신의 사이즈에 맞는 방석을 보자 너무 좋았나보다. 진작 마련해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도 새것과 헌것을 귀신같이 알아본다. 방석도 새로 생긴 방석에 몰린다. 진순이는 독자님이 보내주신 커다란 방석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지(평소에 방석이 작아서 방석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방석에 누워 나오지를 않았다. 얼마나 방석이 마음에 들었던지 밥도 먹지 않고 방석을 사수했다. 한끼를 굶고 두 번째 식사 때에도 방석에서 나오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밥을 방석 위에 줬더니 누워서 먹었더랬다. 우리 집 애들만 그렇치는 않겠지만 우리 애들은 방석을 둘이 같이 쓰는 경우가 많다. 나는 살짝 우리 애들이 하나같이 착해서 그렇다고 자랑하고 싶지만 다른 아이들도 그럴 거 같아서 자랑까지는 못하겠다. 독자님들의 많은 성원에 힘입어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월복이와 이복이(위), 현복이와 꾀복이(아래)가 사이좋게 방석을 나눠쓰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착한 울 애들인거 같다. 어쩜 이리 착할까~^^


예전에 바둑이와 얼룩이가 어렸을 때 예복이가 엄마를 자처하고 아이들을 돌봤었다. 지금도 바둑이는 예복이 곁에 있는 걸 좋아하고, 간식을 주면 자기꺼를 빨리 먹고 예복이 입에 있는 간식을 가져간다. 예복이는 입 속에 있던 것도 그냥 바둑이에게 내준다. 하는 수 없이 항상 간식을 줄 때 바둑이 먼저 주고 바로 예복이를 줘서 바둑이가 먹는 동안 예복이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근데 얼마전 하늘나라로 떠난 아기 3형제도 귤복이가 정말 잘 돌보았다. 잠이 많고 집중력이 부족해서 조금 덤벙거리는 엄마이기는 했지만 새끼 강아지를 연신 핥아주며 돌봐주었다. 그런 귤복이가 싫지 않은 듯 아기들도 귤복이에게 매달려 있곤 했다. 귤복이의 젖을 보아하니 한두번은 새끼를 낳았을 것 같았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천사같이 착한 귤복이는 아기 3형제에게 애정을 듬뿍 담아 보살피고는 했다. 마지막 아기가 죽던 날, 귤복이는 격리를 해논 안전문 창살 사이로 팔을 집어넣고 그 새끼를 흔들며 낑낑 대고 있었다. 깜짝 놀라 달려가보니 그 아기가 잠자듯 세상을 떠나 있었다. 마지막 아기를 묻어주고 귤복이를 껴안고 한참을 울었었다.     

 

요즘 자주 벽난로 앞에 앉아 불이 타오르는 것을 지켜본다. 피어오르는 불꽃은 묘한 안도감을 선사한다. 그렇게 불꽃을 응시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옆에서 나를 톡톡 두드린다. 돌아보니 동복이다. 그 큰 눈을 뛰굴뛰굴 굴리면서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런 동복이를 나도 애정을 듬뿍 담아 바라본다. 동복이는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 자신의 방식대로 코고는 소리를 내며 열심히 위로하고 있다. 그게 너무 고마워 동복이를 무릎에 앉히고 꼭 안아주었다. 동복이의 온기가 나를 꼭 안아주는 것이 느껴졌다. 이러니 내가 우울에 잠시 빠져있을 틈이 없다. 내가 풀이 죽어있으면 아이들은 귀신같이 눈치채고 나를 위로하러 달려든다.     

    

동복이가 그 큰눈으로 날 바라볼때 나는 너무 좋다. 우리 동복이가 요즘 부쩍 말을 안듣고 있지만 나는 그래도 동복이가 좋다.


숲속에 둘러 쌓여 있는 이곳은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새들의 명랑한 지저귐과 조금씩 들리는 개구리 우는 소리들이 봄이 머지않았음을 알린다. 참 많은 일이 있었던 겨울이었지만 이런 겨울도 지나가고 있다. 동물을, 특히 길 위의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겨울이란 다른 이들에 비해 훨씬 혹독하게 다가온다. 얼어붙을 듯한 추위에 어쩔줄 몰라하게 되고,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린 눈을 보며 고양이와 개들의 젤리발을 걱정하게 된다. 이렇게 한시도 편할 날이 없게 몰아치던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유독 더 힘들었던 겨울이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듯 싶어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그래도 이 겨울 최선을 다했으니 됐다 싶다. 나 자신에게도 토닥토닥 잘했다고 등이라도 두드려주고 싶은 날이다.     

                              

눈이 오던 날, 우리집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다. 이제 이 겨울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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