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름이 다가와서 인지 집안에 파리가 자꾸 들어온다. 시골에 살기 전에는 파리도 죽이지 못하고 밖에 놔주고 했는데 시골에서는 파리를 살려둘 수가 없다. 파리가 정말 성가시게 굴기도 하고 그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아이들이 내가 파리를 죽이는 꼴을 못본다. 파리를 잡으려고 책상을 내려치기라도 하면 겁이 많은 아이들이 내 책상 옆에서 자고 있다 놀래서 구석으로 가서 벌벌 떨기도 하고, 파리채를 휘두르기라도 하면 애들이 전부 깨서 집 밖으로 도망가 버리기도 한다. 예전에 큰소리로 혼이 났거나 막대기로 맞았거나 하는 나쁜 기억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파리를 잡지 못하고 손으로 홱홱 조용히 휘두르며 파리를 쫓을 뿐이다. 지금도 파리 3-4마리가 나를 엄청나게 성가시게 하지만 나의 아이들의 단꿈을 깨울 수 없어 참으며 글을 쓰고 있다.
항상 홀에 있는 침대는 만원이다. 착하디 착한 우리 아이들은 서로 싸우지 않고 한자리씩 차지하고 누워있다.
바깥을 두려워하던 바둑이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바둑이를 한번 데리고 나갈려고 하면 바둑이가 침대 밑으로 쏙 들어가지 못하도록 모든 진입로를 막고 몰아서 겨우 잡고는 했었다. 그렇게 데리고 나가도 내가 내려놓으면 집으로 전력질주해서 들어가 버리고는 했는데, 내 노력이 가상했는지 요즘에는 조금 달라졌다. 처음에는 밖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다. 신나게 뛰어다니기도 하고 애들과 장난도 친다. 그러더니 밖으로 데리고 나갈려고 하면 조금 도망치는 시늉을 하다 쉽게 잡혀주었다. 나는 더 박차를 가해 바둑이를 틈만 나면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요즘에는 내가 데리고 나가주길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다. 이제는 도망도 안간다. 봄 햇살을 맞으며 아이들과 뛰어노는 바둑이를 보면 그간 나의 걱정과 노력이 안도의 숨과 함께 눈녹듯 녹아내린다. 밖에서 신나게 놀고 들어와 잠을 청하는 아이들과 달리 바둑이는 집에서 내내 기다리기만 했어서 심심해했다. 괜히 자고 있는 친구를 귀찮게 하기도 하고 그러다 그 친구가 신경질을 내기도 해서 그런 바둑이의 모습을 나는 내내 마음 아프게 보고 있었더랬다. 이제는 같이 나가서 놀고 들어오면 같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본다. 아직 혼자 나가지는 못해도 정말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바둑이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오늘도 내일도 바둑이를 데리고 나갈 것이다.
바둑이가 신나게 놀고 있는데 편백이가 찾아오자 바둑이가 바로 항복이라며 들어누웠다. 바둑이가 얼마나 뛰어놀았는지 혀를 길게 빼고 헥헥대고 있다.
눈복이는 언제나 호기심이 많다. 요즘 잉어 산란기라 잉어들이 수면 가까이로 와서 물장구를 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이 신기한지 넋을 놓고 바라본다.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점점 물에 다가가다 결국 연못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매번 똑같은 환경에 똑같은 일상인데도 우리 눈복이는 끊임없이 새롭고 신나는 일을 찾아낸다. 이제 곧 개구리들이 나타날텐데 또 개구리를 잡겠다고 하루종일 뛰어다닐 것이다. 그럼 나는 개구리를 구해주려고 눈복이를 쫒아서 뛰어다녀야 한다. 아고... 벌써부터 엄두가 안나지만 나는 그래도 눈복이가 좋다. 항상 매일매일을 신나게 열심히 사는 눈복이가 나는 부럽고 대견하다. 나도 눈복이를 본받아서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 보물같은 순간순간을 큰 광주리에 수북하게 담아내고 싶다.
눈복이가 연못으로 자꾸 자꾸 다가가더니 결국 빠지고 말았다. 목욕도 시켜야 하지만 일단 너무 귀여워 그 모습을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하울이가 생리를 시작했다. 보통 우리집에 오게 되면 수컷은 적응을 완료하는대로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지만 암컷의 경우, 수술이 되어 있는지 안되어 있는지 구별하기 어려워 생리를 하는지 확인을 하고 수술을 진행한다. 물론 초음파를 보면 구별이 가능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일일이 병원에 데려가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연유로 하울이가 우리집에 온 뒤 처음으로 생리를 하게 되었고 나는 정확히 생리한지 한달 뒤에 중성화(발정기에는 혈관이 발달되어 있어서 수술을 하게 되면 더 많은 출혈이 발생할 수도 있다)를 하기로 하였다. 문제는 발정기가 온 하울이를 수컷인 바둑이, 꾀복이, 노을이가 너무 괴롭히는 것이 었다. 남자들의 애정공세에 지칠대로 지친 하울이가 너무 간절한 눈빛으로 구원을 요청하기에 하울이를 안고 다니기 시작했다. 잘때도 침대에서 재웠다. 하울이가 발정기여서 그런지 왠일로 소복이가 하울이의 침대 입성을 허용해주었고, 하울이를 따라 침대로 올라오려는 다른 아이들은 무섭게 응징해주어서 하울이가 침대에서는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근데 우리 착한 하울이는 마치 인형처럼 내가 눕혀 논대로 누워서 그대로 나에게 안겨 잠을 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이쁜애가 나의 아이라니 한껏 기분이 부풀어올랐다. 소복이 덕분에 하울이를 안고 자는건 꿈도 못꿨는데 이렇게 이쁜 아이를 못 알아볼뻔 했다. 따끈한 인형처럼 새근새근 내 품에서 자는 모습을 바라만 봐도 너무 뿌듯했다.
하울이는 너무 귀여운 아이이다. 마음은 세상 착하고 애들이랑 다투지도 않고 말도 잘듣고... 백만불짜리 강아지가 내 품으로 쏙 들어온 셈이다.
며칠 전, 엄마의 칠순 생신이었다. 오빠는 서울에 있어서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조촐하게 식사를 하는 것으로 생신을 맞이했다. 오빠와는 요번주 주말에 서울에 가서 다시 축하하는 자리를 갖기로 하였다. 엄마와 나는 정확하게 30살 차이가 나서 나도 40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30대에는 나이들어 간다는 것이 참 두려웠다. 이렇게 늙어가도 되는 것인지,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참 마음이 급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이들어간다는 것이 더 이상 두려운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더 여유로와 지는 나를 발견하게 되기도 하였고, 뭔가를 빨리 이루어야 한다는 부담에서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나이를 먹는 것과 엄마, 아빠가 나이가 드시는 것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나는 아직도 우리 엄마가 칠순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상하게 엄마는 47살에 머물러 계시는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있게 해준, 그리고 이 길을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게 해준 나의 엄마가 언제까지나 건강하시기를 바라고 또 바랄뿐이다. 엄마는 아직도 내게 생명줄과도 같은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엄마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엄마의 현명함의 발끝도 못따라가니 많이 분발해야 할 것 같다.
아빠가 과수원의 풀을 깍아주셨다. 아이들은 넓어진 놀이터가 마음에 드는지 신나게 놀고 있다.
오늘은 개린이날이다. 개린이 날을 맞이해서 정원에서 조촐하게라도 피크닉을 즐길 생각이다. 애들은 내 곁에서 신나게 놀고 나는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싶다. 물론 간식 타임도 가질 예정이다. 나는 지금 내곁에 있는 나의 아이들이 너무 좋다. 한 마리 한 마리 고맙고 사랑스럽다.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야 겠다.
꽃길이 된 과수원 앞에서 우리 이쁜 해복이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우리 아이들이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