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칠순맞이 가족모임도 있고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기 위해 미루고 미루던 서울 방문을 실행하게 되었다. 며칠이지만 아이들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 힘들고 걱정이 되어서 떠나는 날 아침까지도 망설여졌다. 계속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안심시켜 주신 건 부모님이셨다. 이웃집에서 아이들 잘 보살펴 주신다고 약속도 하셨고 나도 오랜만에 서울에 가서 기분전환도 하고 일도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설득하셨다. 나는 못이기는 척 눈을 질끈 밟고 서울로 떠나는 차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도착한 서울은 각양각색의 맛있는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 즐비했고 분위기 좋은 카페와 술집이 넘실대고 있었다. 백화점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고, 커피숍에서 맛보는 커피는 신선하고 달콤했다. 밤이 되어도 여기저기 조명들은 아직 하루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도시는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날에 나는 환희에 차 수많은 인파 속으로 우르르 섞여 들어갔다. 도시의 에너지가 내 몸을 찌르르 떨리게 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볼일을 마치고, 친구들을 만나 밤늦도록 박장대소를 하며 웃고 떠들었다. 꺼지지 않은 도시는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여전했다. 아직도 길거리에는 사람과 차로 북적이고 있었지만 나는 조금 피곤해지기 시작하여 나의 사랑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골에는 대중교통수단이 없어 구석구석 안가는 곳이 없는 지하철을 몹시 그리웠기에 지하철을 무슨 놀이공원 놀이기구 마냥 신나게 타고왔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둘째 날부터였다. 아침에 눈을 뜨자 새소리가 아닌 공사하는 소리가 내 귀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거기에 지난 밤 마신 술로 몸은 무거웠기에 한층 가라앉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 하루 서울을 온몸으로 반겼을 뿐인데 벌써 그 마음이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알록 달록한 가게들이, 화려하게 빛나는 밤거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새들의 아침 노래가, 바람이 나무를 간지럽히는 소리가 그리워졌다. 서울에서의 편리하고 깨끗하게 갖추어져 있는 모든 문명의 이기들이 더 이상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나는 서둘러 일을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서울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서울을 뒤로 하고 떠나는 날 나는 아무런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 도착하면 또 얼마나 나를 원망 섞인 눈으로 바라보며 밀치고 때리면서 열렬히 환영해줄까. 또 앞구르기, 뒷구르기를 하며 내가 온 것을 자축하느라 난리가 날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서 드디어 애들을 만나자 나의 예상대로 나의 아이들은 한참 환영식을 치르고 나서야 나를 풀어주었다. 나는 그동안 사료만 먹었을 아이들을 위해 서울에서 공수해온 재료로 특식을 만들어서 밥을 주었다. 배부르게 밥도 먹고 나도 오고 아이들은 만족한 모습으로 모여들어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애잔하던지... 다시는 애들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하게 만든다.
밖은 어느새 작은 빛 줄기도 없는 시커먼 시골의 밤이 내려앉았다. 나는 아이들을 재워놓고 살짝 침대를 빠져 나와 책상에 앉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채도를 지닌 스탠드 불을 켜 방안을 은은한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아껴둔 향초를 꺼내 조심조심 불을 붙이자 잔잔한 목련향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커다란 머그잔에 내 가슴까지 따뜻하게 녹여줄 홍차 한잔을 타서 노트북 옆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호호 불어 한 모금하며 내뱉은 숨에서 서울에서의 온갖 욕망을 내려 놓았다. 그 욕망대신 은은한 조명과 촛불에 비춰지는 내 아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기다려 줘서 고마워. 우리 또 오래오래 같이 있자.” 동복이의 코고는 소리만이 내 음성에 대답한다. 행복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