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그니깐 초등학교 고학년쯤에 신문에서 어떤 동물운동가가 어려서부터 동물을 위해 채식을 하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를 접하고 나도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었으나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엄마의 굳은 믿음으로 인해 나의 채식은 대학교 이후로 밀려나게 되었다. 대학교에 가서도 술자리마다 고기를 구워 대는 바람에 채식만 하기가 힘들었지만 나는 그럭저럭 체식위주의 식단을 지켜올 수 있었다. 엄격히 따지자면 나는 페스코 베지테리안이지만 그것도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에는 부모님의 식단을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달랐다. 나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나는 영국에 머무는 내내 고기를 거의 먹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영국 친구를 사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공부하는 분야가 ‘동물복지’인 만큼 같은 학과 학생들 중에는 채식주의자들이 꽤 많았다. 동물복지를 공부하지 않아도 영국 학생들은 채식주의자들이 많이 있는 모양이었다. 학교의 모든 캠퍼스 식당에는 언제나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채식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도 동양애가 채소로만 가득한 도시락을 갖고 다니니 신기해 보였던 것 같다. “너 채식주의자니?”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채식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야”라고 답했다. 영국에서 인종 차별적인 대우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제되어 있는 무언가가 항상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깨고 친구들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게 하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부분이 채식에 대한 대화였다.
채식이라는 공통분모가 생기자 그들은 나와 그들 사이의 벽을 조금 허물고 들어왔다. 그리고 나의 채식식단을 응원해주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기도 했다. 또한 친구들과 식당을 가면 항상 채식메뉴가 있는 곳을 갔으며 이런 분위기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채식 식단이 마련되어 있는 곳이 많지 않다보니 어디 가서 내가 채식주의자라고 말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나로 인해 상대가 메뉴를 선택하는데 제한을 주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여기서는 채식주의자도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도 같이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이 즐비했다. 채식을 하는 것이 뭔가 거창한 무언가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그냥 취향 중에 하나에 불가한 분위기가 좋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동물 보호에 앞장서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있어서 한편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동물 보호 차원에서의 채식보다는 환경과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내가 만난 영국의 채식주의자들도 그들이 채식을 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나처럼 동물과 건강한 먹거리의 개념에서 채식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환경을 파괴하는 공장식 축산을 막고 싶은 마음에 채식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어떤 친구는 자신의 피부 건강과 몸매 관리를 위해 채식을 하게 됐다는 친구도 있었다.
채식을 하게끔 만드는 현대의 축산방법을 집약적 축산 또는 공장식 축산이라고 불린다. 공장식 축산은 쉽게 말하면 높은 밀도 사육을 통해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높은 산출을 하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은 동물 복지적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은 막대하다.
먼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슈퍼박테리아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한번이라도 공장식 축산의 시설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이런 열악하고 인공적인 환경에서 동물이 제대로 된 면역력을 갖추기란 어렵다는 사실을 쉽게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에서 질병으로 인한 폐사율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바로 약물이라는 생각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항생제, 항곰팡이제, 항기생충제 등 여러 약품이 동물에게 주입된다. 이 모든 약물은 고스란히 동물의 몸에 축적된다. 이로 인해 항생제 저항성 세균(슈퍼 박테리아)의 확산을 촉진한다. 이런 약물이외에도 성장 촉진제 등 여러 약품으로 점철된 고기를 먹고 싶지 않아서 채식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환경을 생각한 채식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축산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농장 동물의 배설물이 배출되고 이는 땅과 물의 오염을 가중시킨다. 예전 전통 방식의 축산은 그 배설물이 비료가 되었지만 지금처럼 공장식 축산에서 나오는 배설물의 양은 실로 엄청나며 또한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포함하고 있어 더 이상 비료로써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다. 2.500마리의 젖소가 방출하는 분변은 도시의 411.000명의 사람만큼의 양이며, 도시의 사람 분변은 정화시설을 거치는 반면에 대부분의 가축 분변은 그렇지 않다. 이처럼 오늘날의 공장식 축산이 생태계의 파괴와 온실효과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런 환경 파괴는 이상 기후 변화로 우리 앞에 실체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공장식 축산이 정말로 계속해서 증가하는 인구의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일까? 해마다 발생하는 전염병으로 인해 살처분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살처분과 방역에 들어가는 비용과 살처분 당하는 동물의 수는 이런 방식이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질병이 발생하는 원인을 단순히 공장식 축산의 문제로만 볼 수만은 없지만, 인위적으로 조작되어 단일화된 동물들, 열악한 환경, 과도한 밀집사육은 질병을 급속도로 전파시키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3분의 1이 돼지와 소 등의 가축 사육을 위한 사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 곡물의 양은 세계 10억 명 이상의 식량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양이다. 그러므로 공장식 축산은 철저히 조금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등장한 것이 바로 동물복지형 농장이다. 동물복지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사람들은 흔히 동물에게만 이로운 행위라고 생각하기 쉽고 가장 흔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사람도 살기 힘든데 동물의 복지는 무슨 때이른 소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동물복지가 동물의 삶만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이로운 공존을 뜻하는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특히 농장 동물에서 동물의 복지가 향상됨에 따라 인간의 복지도 향상된다는 증거는 많은 연구를 통해 이미 밝혀진 바이다. 이미 유럽의 선진 국가에서는 복지형 농장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규제도 점점 엄격해 지고 있는 추세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변화의 물결을 받아드릴 때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을 주더라도 나의 건강과 내가 그리고 나의 아이들이 살아갈 이 지구를 보존하기 위해서 동물복지형 식품을 구매해야 한다.
더 이상 채식위주의 식단은 동물 보호를 외치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좀 더 나은 사회, 제한된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고자 하는 이들의 작은 움직임이다. 만약 육식을 끊을 수 없다면, 조금 줄여보면 어떨까? 일주일에 하루 채식의 날을 갖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또는 동물복지인증 마크를 단 식품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수많은 농장 동물의 생명은 가격을 따지기 이전에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의 작은 소비 변화가 하나 둘씩 모인다면 세상을 바꿀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