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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영 Jan 11. 2018

육체 노동의 즐거움

많은 동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

나는 개 8마리와 고양이 3마리와 함께 시골에서 생활한다. 이런 시골 생활은 적절한 육체노동이 수반되어야만 영위할 수 있다. 물론 현대식으로 편리하게 환경을 조성해 놓으면 한결 수월하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옛날 기와집에서 그것도 많은 동물 식구들과 함께하는 삶은 언제나 할 일이 태산이고 계절마다 해줘야 하는 일들도 많다.


이런 일들을 그저 하기 싫은 일로만 생각하면 시골 생활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나도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청소를 해도 해도 더러워지는 실내와 돌아서면 생기는 아이들의 말썽에 지치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시골 생활 3년 차로 접어들면서 나에게 적절한 육체노동은 오히려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내가 나무를 하러 나가면 신나서 모든 개들이 쫒아나온다. 나는 일을 해서 좋고, 애들은 나와 놀아서 좋고, 모두가 만족하는 시간이다.


책을 보건 글을 쓰건 장기간 앉아서 업무를 보면 자연스럽게 몸은 처지게 되고 머리는 들은 것도 없으면서 무거워진다. 특히 추운 겨울철에는 더하다. 몸은 움츠러들고 일은 일대로 잘 풀리지 않는다. 그저 침대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을 뿐이다.


이럴 때가 바로 일어나서 밀린 일을 해치워야 할 때인 것이다. 곳곳에 떨어진 아이들의 털을 깨끗이 쓸고, 마당에 떨어진 온갖 잡동사니(보통 개들이 물고 온 쓰레기들)와 배설물들을 말끔히 청소한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산에서 나무를 해오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집은 장작을 따로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지 않고 숲 속에 떨어져 있는 죽은 나무들을 연료로 사용한다. 숲도 깨끗해지고 생명도 해치지 않으니 일석이조다. 개들을 이끌고 숲 속으로 들어가서 이곳저곳에 떨어진 나무를 모으다 보면 어느새 머리가 정화되고 내 폐 속에는 청량한 공기가 한가득 모이게 된다.


구루마 가득 나무를 하였다. 뿌듯함이 밀려온다. 오늘 하루 종일 나무 걱정은 없겠다.


이런 육체노동의 즐거움에 대해 말한 문인으로 대표적으로는 톨스토이가 있다. 그는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는 일상적인 노동을 무시하고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 고도하였고 “육체노동을 할 때에만 지적이고 영적인 삶이 가능하다.”라는 말도 하였다. 헤르만 헤세는 정원을 가꾸는 일을 좋아하였다. 헤세는 이런 실제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정원 일의 즐거움>이라는 글도 저술하였다. 또한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전원생활을 영위하는 타샤 튜더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다림질, 세탁, 설거지, 요리 같은 집안일을 하는 게 좋다.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늘 가정주부라고 적는다. 찬탄할 만한 직업인데 왜들 유감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가정주부라서 무식한 게 아닌데.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을.”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이런 문인들의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에 아로새기며 일을 한다. 진순이와 행복이는 서로 장난치다 사료통을 엎기 일쑤이고, 편백이는 항상 밥을 튀기며 먹는 버릇 때문에 밥을 먹고 난 자리가 더럽기 짝이 없다. 축복이는 이불을 찢어서 솜을 빼는 것이 유일한 낙이고, 유복이는 아직 배변 훈련이 안되어 있다. 소복이는 매일 같이 온갖 쓰레기를 다 가져오고, 루복이는 내 침대를 더럽히는 것을 좋아한다. 거기다 화장실 갔다 나오면서 꼭 발을 거실에서 터는 고양이들도 있으니 허리 한번 펴기가 힘들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집안이 엉망이 되어 있어서 누가 그랬냐고 묻자 푸딩이가 숑이 뒤에 가서 숨는다. 귀여워서 더는 혼을 낼 수가 없었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나의 지적이고 영적인 삶을 위해 친절하게 일거리를 제공하는 나의 개와 고양이들에게 나도 친절하게 계절에 맞게 개집도 손봐주고, 때마다 목욕도 해주고, 아프면 약도 챙겨주고, 등도 긁어준다 (등을 긁어주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오늘도 어젯밤에 내 이불에 실수를 하신 고양이님 덕분에 아침부터 이불 빨래를 하느라 분주했다. 거기다 산책 시간이 조금 늦었다고 집안에 두 곳에다 사람 머리만 한 크기의 배설물을 선사한 아프칸 하운드인 루복이도 아침에 날 바쁘게 한 주범이다.


쓸고 닦고 치우고… 그러다가 짬이 나서 앉아서 쓰는 글은 오히려 달콤하기까지 하다. 옛 문인들의 말대로 적절한 노동은 정신적인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나 보다. 서울에 살 때에만 해도 일을 할 때는 카페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서 온갖 우아한 폼을 다 잡아야 일할 준비를 마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짬을 내고 틈을 내서 벽난로 옆 작은 테이블에서 일을 한다. 그저 노래 한 곡 틀어놓으면 일할 준비는 마친 샘이니 잠든 아이들이 깨기 전 곧바로 일에 집중한다. 아이들과 최대한 같이 있어주려니 외출은 언감생심 꼭 필요할 때 이외에는 하지 않으니 카페는 언제 갔는지 가물가물하고 도서관은 책을 빌릴 때 이외에는 가지 않는다.


요즘은 벽난로 옆 작은 테이블이 내 공간 전부이다. 내 방이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어 낮에는 거의 이곳에서 일을 본다. 부족할 것 없는 공간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활이 좋다. 쓸데없는 근심이 날 찾아올 새도 없고, 괜한 조바심에 나 자신을 볶아 될 필요도 없다. 시간이 돌고 돌아 아침에서 낮으로, 다시 어스름한 저녁으로 옮겨가듯 나는 그날 그날 주어진 나의 일을 해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숲과 나무들, 햇빛과 바람이 묵고 탁한 기운을 풀어내고 그 대신 맑은 기운으로 내 몸을 채워주니 항상 활력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나만의 가장 중요한 방법은 나에게 주어진 일을 즐기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동물과 자연은 나에게 많은 행복과 기쁨을 선사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책임져야 하는 일도 가져다준다. 만약 이런 일들을 회피하고 싶어 했다면 나는 영원히 이들이 주는 삶의 환희를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일이 주는 의미와 보람을 찾아 즐겁고 성실히 임한다면 나는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 나의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함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는 소복이와 은복이. 둘 다 하얀색이라서 꼭 아버지와 아들같다. 착하게 떼쓰지 않고 조용히 옆에 있는 모습이 너무도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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