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서영 Feb 12. 2018

가냘픈 한 송이 들꽃 같은 유복이

강아지 공장에서 나온 나의 유복이

한차례 한파가 휩쓸고 간 뒤 조금 몸을 풀고 기지개를 켜려는 순간, 어제부터 다시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은 오지만 날씨는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인 걸 보면 봄도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추운 날씨 탓에 좀처럼 밖에 나가지 않던 개들과 고양이들은 함박눈 소식에 다시 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올 해의 겨울은 유독 추웠던 까닭에 추위에 약한 유복이는 나와 내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유복이는 보통 얌전한게 아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특유의 슬픈 눈동자로 방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저 지켜볼 뿐이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만 서울에 가시고 나는 이곳에 남아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개 한 마리를 더 입양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절대 더는 개의 수를 늘리지 않겠다는 나의 확고한 의지로 항상 마찰을 빚어오던 문제가 다시 거론된 것이다. 일단 사연부터 들어보기로 하였다.


이번에는 강아지 공장 주변을 맴돌고 있던 개를 구조했는데 학대를 당했는지 사람을 극도로 무서워하며 잔밥을 먹였는지 치아 상태도 좋지 않고 영양상태도 매우 안 좋은 상황이란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강아지 공장에서 번식을 위해 길러지다 버려졌을 거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유복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의 모습이다. 털은 마음대로 엉켜있고 털 속의 몸은 거죽만 남아 있었다.


이런…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스토리를 가진 아이였다. 그렇게 유복이는 엄마 품에 안긴 채로 시골집으로 왔다. 엄마의 말대로 사람을 무서워해서 누군가가 지켜보는 가운데엔 밥을 먹지도 물을 마시지도 못하고, 볼 일도 보지 못하였다. 부스스한 털을 깎아보니 너무 예쁜 얼굴과 함께 뼈만 앙상한 몸이 드러났다. 나이는 6-7살 정도로 추정되는데 치아 상태는 15살 나이에 육박해 있었다.


그간 너무 박복하게 살았을 유복이에게 앞으로는 유복하게 살라고 유복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유복이는 그렇게 건드리면 풀썩 쓰러져버릴 것 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왔다. 안 좋은 치아 때문에 부드러운 밥을 먹여줘야 하고, 잡종견들과 다르게 털 손질도 해줘야 하고, 유독 애들에게 치이는 탓에 항상 안아주고 신경 써줘야 하는 유복이는 손길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늦봄에 찍은 사진이다. 살도 제법 붙었지만 여전히 조금은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유복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몸도 약하고 애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나를 꼭 닮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와 다르게 씩씩하고 건강하고 행복이 넘치는 개구쟁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작고 약한 순종보다는 잡종을 좋아한다. 그런 나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유복이는 내가 가장 꺼려하는 개에 속했다.


하지만 유복이가 마음의 문을 열수록 내 마음속에도 유복이가 굳건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입양을 하였을 때 가장 뿌듯한 순간은 아마도 입양견이 마음의 빗장을 푸는 순간일 것이다. 자신이 안전한 곳에 있으며 아무도 자신에게 해를 끼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개는 조금씩 긴장을 풀고 다가온다. 잘 때에도 구석에서 웅크리고 자더니 점점 자리를 잡고 다리를 쭉 피고 자는 모습에서, 산책할 때 내 눈치만 보고 내 옆에 찰싹 붙어 있다가 조금씩 궁금한 곳을 탐색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에서 나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유복이를 온 마음을 다해 품에 꼭 안고 있었다.


표정이 한층 밝아진 요즘의 유복이이다. 요즘에는 가끔 짖기도 하고 신날때는 조금 뛰어보기도 한다. 너무 귀여우면서도 애처러운 몸짓이다.

요즘에는 밤이 되면 으레 내가 안고 내 방으로 가는 줄 알고 기다리는 모습도,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 촉촉한 눈망울도 가슴 아프게 사랑스럽다. 그렇다. 유복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보고 있으면 웃음이 지어지는 사랑과는 또 다르게 가슴이 아픈 사랑이 느껴진다. 어쩌다 기분 좋아 깡충깡충 뛰면 행여 유복이의 흥이 깨질까 봐 나도 따라서 깡충깡충 뛰기도 한다. 유복이는 그렇게 쉬이 깨질 것 같은 가냘픈 아름다움을 지닌 들꽃과 같다. 너무도 여리한 줄기에 매달려 위태로워 보이지만 그래서 더 가까이 다가가 소중히 지켜주고 싶은 그런 매력을 지녔다.


유복이는 오늘도 눈길을 조심조심 걸으며 나와 보조를 맞춰 산책을 할 것이다. 그리고 돌아와서 따듯하고 부드러운 밥을 하나씩 천천히 먹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나면 다시 내 방 침대에서 나에게 기대 잠을 청할 것이고, 나는 그런 유복이가 깰까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조심하며 잠이 들 것이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나의 유복이는 사랑 가득하고 행복한 여생을 살아갈 것이다.


춥다고 옷을 두겹 껴입고 산책에 나섰다. 작은 발로 열심히 나를 따라 산책을 마치고 다시 따듯한 내 방으로 직행하였다. 오늘 산책도 즐거웠기를 바래본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나짐 히크메트의 말처럼 유복이의 유복한 삶도 이제 막 시작된 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체 노동의 즐거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