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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영 Aug 06. 2018

이별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였을 때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개와 고양이에게 그 주인보다 몇 배나 짧은 수명을 주셨다. 어쩌면 주인 없이 살아가야 하는 반려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시려는 배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온 마음을 주고 서로 보듬어주는 사이가 된 반려동물을 어느 날 나에게서 앗아간다는 것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불과 몇 년 전 (몇 달 전처럼 느껴지는) 어느 좋은 날, 사랑스런 한 식구로 나를 찾아왔던, 그리고 나의 마음을 단 번에 가져갔던, 그런 개가 벌써 나이가 들어 쇠약해지고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이런 개에게 마음을 주는 게 과연 현명한 처사일지 고민하게 된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강아지였던 개가 또는 이제 막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던 개가 벌써 노쇠한 모습으로 탁해진 눈빛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 그리고 기껏해야 몇 년이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알게 될 때, 그것은 삶이 얼마나 무상한지를 알게 해주는 슬픈 경고이다. 어떤 주인이나 사랑하는 개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들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걱정으로 인해 미래를 향한 눈빛도 침침해질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는 것을 고백한다.


나의 사랑스러운 숑이. 나의 곁에 있어주러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한창 병마와 싸우고 있을 때이다.


동물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노쇠한 개들의 죽음을 수도 없이 봐왔지만 그때마다 나는 너무 슬퍼서 어떤 위로의 말도 안 나올 때가 많았다. 내가 이렇게 슬픈데 같이 10년에서 15년을 함께한 가족들의 슬픔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 정도가 심한 사람은 ‘펫로스 증후군’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렇게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 지지 않는 죽음의 그림자가 나의 사랑스런 개에게 찾아왔을 때 나는 공포심까지 느꼈다. 도저히 그 아이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그들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저며온다.  


나는 안락사를 권유하는 수의사에 속한다. 죽음을 앞두고 가망 없는 힘겨운 고통 속에 있는 아이들을 보면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보호자와 떨어져서 입원실에 갇혀 있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다시 건강질 수 있다면 그 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빨리 이 고통을 끝내주는 것 또한 수의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원칙을 나의 개들에게도 적용하여 삶의 끝자락에서 고통을 맞이했을 때, 안락사를 진행한다. 산소 호흡기를 달고 내 방에서 겨우겨우 버텨가던 아이를 보내주기로 마음먹는 날 나는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슬펐다. 슬프다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내 마음은 고통스럽게 찢어진다. 그렇게 한 아이를 보내고 나면, 지금 내 앞에서 기쁨의 춤을 추고 있는 개들을 하나씩 보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나와 함께 산책 중인 아이들이다. 비록 한정된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오롯이 함께하며 사랑을 쌓아나가기로 결심해 본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다시 동물을 키우는 것을 꺼려한다는 것 또한 잘 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보내고 병원을 나서는 많은 보호자들이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못할 것 같아요”라는 말을 남기고 가기 때문이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나는 모든 기쁨에는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도 뒤따른다고 생각한다. 그 고통이 두려워서 그 기쁨을 놓쳐 버리기에는 동물과 교감할 때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 너무 크다.


배우 다니엘 헤니가 한국 개농장에서 개를 입양하였다. 그 행운의 주인공은 바로 골든리트리버 ‘로스코’다. 사진은 헤니의 반려견 '망고'이다.


늑대가 저 먼 옛날, 처음으로 인간을 쫓아다니기 시작한 이래로 개들은 인간에게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사랑과 충성을 바쳐 오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키운 개들도 그러하다. 그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버려진 수많은 생명에게 그들이 행복할 수 있고 다시 넘쳐나는 사랑과 충성을 사람에게 바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닐까? 아직도 세상에는 우리의 사랑을 기다리고 우리에게 사랑을 주고자 하는 동물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최근에 준비되지 못한 이별을 두 차례나 경험하였다.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어 이름조차 여기에 올릴 수 없었다. 아마 평생 그 아이들을 가슴에 묻고 지내야 할 것이다. 그 빈자리가 너무도 아프게 나를 찔러대지만 아직 내 곁에 남아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그 몫까지 사랑을 주고자 한다. 이 글은 어쩌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힘들때 위로가 되었던 삽화이다.


어느 뉴펀들랜드 개의 묘비명           
조지 고든 바이런  


여기에  

그의 유해가 묻혔도다.

그는 아름다움을 가졌으되 허영심이 없고

힘을 가졌으되 거만하지 않고

인간의 모든 덕목을 가졌으되 악덕은 갖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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