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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영 Jul 30. 2018

관광객이 버리고 간 다복이

우리 집에서 가장 작고 똑똑한 다복이

어느 늦은 오후, 나는 소복이, 유복이와 함께 내 방에서 꿀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모두 내 방 침대 위에서 자리를 잡고 단잠에 빠져있었고 나는 읽고 싶던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너무나 작고 귀여운 까만 푸들이 엄마에게 안겨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뛰어나가 개를 안아 올렸다. 개는 경계심이 없이 나에게 바로 안겨 털 색깔과 같은 까만 눈동자로 가만히 나를 올려다 보았다.


다복이는 작고 까만 털에 까만 눈을 하고 우리 집에 왔다. 이제부터는 다복하라고 다복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렇게 찾아온 다복이는 시장에서 관광객에 의해 버려져 며칠을 방황하다 아빠 친구분이 운영하는 가게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며칠을 자지도 먹지도 못한 다복이가 안쓰러워 밥을 조금 내어주었더니 그때부터 그 가게에서 절대 나가지 않고 버티더란 것이다. 개를 키울 형편이 안 되시는 그분은 아빠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부모님은 상의 끝에 데리고 오기로 했던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은 휴양림과 주말마다 열리는 시장이 유명한 곳으로 관광객들의 출입이 잦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일은 생각보다 흔하게 나타난다. 휴가철에 많은 유기견이 발생하는 것을 보아도 얼마나 사람들이 쉽게 자신이 키우던 동물을 포기하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개를 버리는 이유로는 주거환경의 변화, 훈련 및 교육 부족으로 인한 생활 속 불편함, 건강과 위생에 대한 우려로 인한 것으로 크게 볼 수 있다.


다복이는 까만 눈으로 사람을 곧잘 쳐다본다. 그 눈빛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사랑스럽다. 보석같은 눈을 가졌다.


내가 수의사라는 것을 밝히면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키웠던 충직한 개에 대한 에피소드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 대화의 끝은 항상 우울하기 짝이 없다. 1973년 노벨상을 수상한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의 저서 ‘인간, 개를 만나다’에서도 비단 나만 이런 경험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 개를 아직도 키우고 있는지 물어보면 곧잘 아주 놀라운 대답을 듣게 된다. “아니오,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집이 너무 작아서 “, “개를 키우기가 힘든 일자리를 얻게 되어서” 등의 이유로 “개를 딴 사람한테 주었지 뭐예요.”라고 한다. 도덕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사람들이 아무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신이 한 행동을 인정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개의 경우를 살펴보면, 개가 주인에게 보여 주는 충직한 마음은 우리 사회 속에서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정도로 굳건하다. 어떤 이와 우정을 맺을 때 신뢰가 필요한 것처럼 개의 충성심 또한 변치 않는 신뢰를 동반하는 값진 선물이다. 충성스러운 개 한 마리와 맺는 인연은 영원하다고 표현할 만큼 깊은 유대 관계를 동반한다. 개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작은 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얼마나 헤매고 다녔을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찢어진다. 이제는 그 작은 몸을 편히 기대고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복이는 크기가 너무 작아서 (3kg도 채 되지 않았다) 새끼 강아지인 줄 알았지만 치아 상태를 확인해 보니 족히 5살은 넘어 보였다. 까맣고 뽀글뽀글한 머리를 한 다복이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외모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머리도 똑똑해 모든 금방 적응하고 금방 알아차렸다. 내 말과 손짓에 대한 이해도도 높을 뿐만 아니라 어떤 개를 조심해야 하고 어떤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놀라울 정도로 빨리 습득하였다. 또한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앉아’와 ‘엎드려’라는 명령어를 수행하는 아이이다 (교육을 못 시키는 나의 잘못으로 우리 아이들은 천방지축 어떤 명령어도 무시하며 지내고 있다).


창틀에 앉아 있는 까만 개가 다복이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도 크기가 현저히 작은 것이 보인다.


이런 작고 예쁜 아이를 무슨 연유로 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여 잘 짖는다는 것이었다. 그 작은 몸으로 집을 지키겠다고 짖어대는 것이 내 눈에는 그저 귀엽게 보이지만 아파트와 같은 환경에서는 큰 문제가 되었을 수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주인만을 바라보며 평생 충성을 다해온 개를 버리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다.


온 몸도, 눈도, 코도, 입도 까맣다. 까만 색이 이렇게 예쁜 색이라는 것을 다복이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까만 개를 기피한다는데 같이 지내보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색이 없다.


고양이들 중에 무릎냥이가 있듯이 우리 다복이는 무릎멍이이다. 내가 앉아있으면 언제든 다가와서 무릎에 올려달라고 갖은 애교를 선보인다. 그리고는 내가 자신을 안기 편하도록 자세를 취해준다.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무리 바쁜 일을 하고 있어도 웃으며 내 무릎을 내어주게 된다. 그러면 그 뽀글거리는 털을 동그랗게 말고는 자리를 잡고 만족스러운 듯이 휴식을 취한다. 다복이에게서 전해지는 사랑스러운 온기를 느끼는 시간은 행복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순간이다.


내 무릎에 앉아 있는 다복이. 내가 자리에 앉기만 하면 쏜살같이 달려와서 안아 달라고 떼를 쓴다. 그 모습은 항상 나를 미소짓게 만든다.


며칠을 헤매며 자신이 살 곳을 찾아 다니던 우리 다복이는 다시 다복한 가정의 새 식구가 되었다. 실내에서 편하게 자랐을 다복이는 기특하게도 시골생활에 잘 적응해 주고 있으며 다른 개들과도 우애 있게 잘 지내주고 있다. 이렇게 똑똑하고 작고 까만 다복이를 우리 가족은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우리 집에서 언제까지나 오래 오래 함께 행복을 나누며 살게 되기를 바랄뿐이다.  


까만 개와 하얀 개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둘다 키가 작아서 풀 숲이 우거진 곳으로 가면 같이 바위에 올라가 먼 곳을 내다보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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