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매일 배우는 것들
인간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동물이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다. 이로 인해 서로 상처의 골은 깊어지게 되고 심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 시작은 아주 단순한 논리를 지키지 않아 발생하게 된다. 즉 모든 좋은 관계는 나에게 좋지 않게 들리거나 나에게 상처가 될 행동들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때론 상대에게 상처를 주려고 말을 하기도 하고,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기 위해 무례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상대방도 나에게 똑같이 반응하게 되고 결국에는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가끔 그런 경우를 당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그저 내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개들을 보거나 그저 잔잔하게 그 풍경을 유지하고 있는 자연을 봤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괴리감을 느낀다. 인간만 시끄러운 세상. 그 세상 속으로 결코 들어가고 싶지 않은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도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번 잘해보자고 일어서려는 노력을 한다.
강신주의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란 책은 불교의 48가지 화두를 다루고 있다. 거기에 보면 스님들이 바람의 움직임을 보고 논쟁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스님은 깃발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스님은 바람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때 다른 스님이 나타나서는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바람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라고 답한다. 그럼 대체 무엇이 흔들린다는 소리일까? 바로 깃발도 바람도 아닌 그것을 보고 있는 자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누군가의 언행으로 다친 내 마음도 그 사람의 말이 칼날이 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칼날이 되어 나를 스스로 찌른 것이 아닐까? 내 마음만 어지럽고 자연도 나의 아이들도 평화로운 것을 보면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의 고요한 물을 휘저어 흙탕으로 만든 것은 상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나와 함께 사는 아이 중에 오복이라고 있다. 언제나 행동이 점잖고 다른 아이들이 심하게 장난을 쳐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먹는 것도 달려들어 먹지 않고 꼭 예절 수업을 받은 아이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주위에 친구가 많다. 오복이와 사이가 좋지 않은 아이들이 단 한 마리도 없다. 어쩌면 그렇게 평정심을 유지하는지 보고 있으면 닮고 싶어진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말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사람보다는 진중한 사람 곁에 있고 싶어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동물이나 자연을 가까이 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 앞에 서면 나의 어지러운 마음이 갑자기 갈 곳을 잃어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리기 일쑤이니 말이다. 자연은 더 할 나위 없는 큰 스승이고 동물은 곳곳에서 많은 것을 얘기해 준다. 언제나 밝아도 된다는 것, 자고 일어나면 다 잊어버려도 된다는 것, 맛있는 것 앞에서는 그냥 행복해해도 된다는 것, 그 순간을 순간으로 받아들이는 것 등을 말이다. 나는 오늘도 많은 스승님들에게 인생의 한 수를 배워가며 살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