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가혹했던 삶에서 벗어난 현복이

현명해서 현복이

by 손서영

여느 때와 같이 보호소에 봉사를 하러 갔다. 보호소에는 보호소에서 새끼를 낳거나 새끼를 낳자마자 새끼들과 함께 보호소로 옮겨진 많은 엄마 유기견들이 있었다. 현복이도 그 중 하나였다. 아직은 애기티를 벗지 못한 모습으로 열심히 새끼들에게 젖을 주고 있었다. 현복이는 내가 간식으로 가져가는 닭고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새끼들을 돌보며 살고있는 현복이에게는 간식을 먹는 시간이 유일한 행복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일까? 대부분의 보호소에 있는 새끼들은 결국에는 얼마 못가서 죽고는 했다. 사육장마다 죽어있는 새끼들이 있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죽은 새끼들을 꺼내서 양지바른 곳에 옮겨주고는 했다.


현복이는 많아야 1살 정도로 보였다. 아마도 첫 생리때에 임신을 한 것 같았다. 그야말로 아기가 아기를 낳았다.

현복이는 유독 새끼들을 열심히 돌보던 아이였다. 연신 핥아주고 젖 물리고 아이들 돌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현복이가 아무리 보살펴도 새끼들이 살기에는 보호소의 환경이 녹록치 않았다. 새끼들이 갈때마다 하나씩 둘씩 줄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새끼가 숨을 거둬있었고 현복이는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자꾸 사육장을 탈출할려고 하고 미친 듯이 짖어댔다. 나는 무섭게 변해버린 현복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또 한번의 안락사가 진행되었다. 유기견으로 꽉차 있었던 보호소가 몇 마리만 남기고 모두 안락사 되고 없었다. 나는 이런 과정을 몇 차례 겪어서 담담하려 애를 쓰며 남겨진 아이들을 돌봤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현복이도 자취를 감췄다.


현복이가 상처를 입고 잘 못걷던 시절에 가만히 누워서 치료를 받고 있다. 무척 착해서 아프다고 싫은 티를 낸 적도 없다.

나는 당연히 현복이가 안락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보호소에 들어온지도 한달이 넘어가니 안락사 명단에 당연히 포함이 되어 있을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보호소에 가서 봉사를 하고 있는 내 앞에 현복이가 나타났다. 뒷다리를 질질 끌면서... 나는 너무 놀라 현복이에게 다가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몸을 살펴보았다. 큰 개에게 물린 자국이 선명했다. 원래의 현복이라면 자기 몸에 손대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날은 무언가 달랐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나는 현복이를 조심스럽게 안아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현복이는 아마도 안락사를 진행하던 날, 죽지않으려고 도망친게 분명했다. 그 과정에서 큰 개에게 물렸는지 아니면 도망치고 나서 들개에게 물린 것인지 상처를 입었던 것 같았다. 상처는 깊었고 피와 진물이 뒤엉켜서 뒷다리 골반쪽에서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나는 현복이를 데리고 가서 상처를 치료해주고 2차 감염을 막기 위해 붕대로 감아주고 항생제를 주사했다. 그렇게 매일 드레싱을 하며 약을 먹는 날들이 계속 되었고 현복이는 많이 지쳤는지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나는 그 곁을 지키며 부드럽게 현복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현복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잤다. 마치 너무 지쳤었다는 듯이 깊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현복이의 상처는 빠르게 호전되었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제는 아주 잘 걸어다니고 뛰어다니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과도 잘 지내며 완벽하게 우리집에 적응하였다. 보호소에서 그렇게 짖던 현복이는 어디가고 입을 꾹 다물고 언제나 꼬리치며 나를 졸졸 쫒아다니는 훌륭한 개가 되었다. 처음 집에 왔을 때는 식탐도 엄청 강했는데 지금은 많이 진정이 되었는지 자기 몫으로 준 밥을 먹은 뒤에는 따로 음식을 찾지도 않게 변했다.


처음왔을 때는 털도 푸석거리고 많이 말라있었다. 상처가 치료되는데 한달이 걸렸다. 처음 밖으로 나온 현복이다.


현복이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었다. 보호소에 버려지고 그것도 모자라 새끼를 눈앞에서 전부 잃어버리는 일을 겪었으니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스트레스를 오롯이 받아낸 현복이는 갑자기 하루 종일 짖고 공격적인 아이로 변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생을 향한 집념이 강했던 현복이는 탈출을 시도하고 또 나에게로 와서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나에게로 오기까지 얼마나 망설이고 두려웠을까? 그래도 살기 위해 그 몸을 하고 뒷다리를 질질 끌며 나에게로 온 것이다. 그 절박함에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친구들과 마당에서 놀고 있다.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건강한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개척한 현복이는 나에게 사랑받는 충견이 되어 내 옆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산책도 잘하고 잘 먹고 잘 자고, 내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 딱 이 3가지를 훌륭하게 해내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이제는 친구들하고도 친해져서 소복이랑 레슬링도 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그때 보호소의 현복이가 상상이 안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너무나 가혹한 삶에 지쳐서 나를 쳐다보던 현복이, 세상에는 이런 현복이가 아직도 많다. 그런 아이들을 모두 보듬을 수는 없지만 현복이만이라도 나에게 와줘서 나는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현복이도 모든 상처를 내려놓고 나와 즐겁게 행복하게 잘 살아줬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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