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만이 몰고온 불행

나의 사랑 화복이

by 손서영

화복이와 월복이 그리고 이복이는 삼총사처럼 어디든 함께한다. 다른 아이들보다 소심한 성격을 지녀서 혼자 행동하기 보다는 언제나 붙어다니며 행동한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있는 다둥이 가정에서 이들만의 살아남는 방식을 찾은 셈이다. 그래서 이 세 아이들은 내가 산책을 나가는 시간에 같이 무리에 섞여 산책을 하기 보다는 우리집 뒷산을 오르는 것으로 그들만의 산책을 한다. 나는 그것을 굳이 말리지 않았고 우리는 그렇게 오랜시간 균형을 이루어 왔다.


KakaoTalk_20201105_203415397.jpg 화복이와 월복이는 자매사이이다. 그래서 항상 같이 장난치며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다.


그러던 어느날 뒷산으로 마실을 나간 삼총사가 집에 들어올 시간이 되어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걱정이 되어서 뒷산을 오르며 아이들을 불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뒷산은 사람이 오르지 않는 산이라 길이 없었고 나는 내가 오를 수 있는 최대 한도치에 다달아서 그만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밤이 되어서야 월복이와 이복이가 들어왔다. 나는 조금 안도했지만 여전히 깜깜 무소식인 화복이가 걱정된채로 밤을 보내야 했다.


KakaoTalk_20201105_203321603.jpg 이복이는 월복이를 좋아한다. 얼마나 월복이한테 잘해주는지 옆에서 보면 눈꼴이 시려울 때가 있다. 그래도 항상 셋이서 놀았는데, 그날따라 둘이만 들어왔다.


다음날이 밝아왔다. 여전히 화복이는 소식이 없었고 월복이와 이복이에게 화복이는 어디있냐고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나는 또 다시 뒷산을 올랐지만 화복이를 찾지 못한채 내려와야 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가고 다음날에도 화복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으로 보호소에 봉사를 하러 갔다. 그런데 보호소에 화복이가 있었다! 이 놈의 보호소는 입소한 아이들을 제대로 공고도 해놓지 않는 곳으로 화복이도 공고가 뜨지 않았었다. 보호소를 욕욕하며 화복이를 향해 한달음에 달려가보니 화복이는 거의 패닉상태였다.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건지 덜덜 떨고 있었고, 오른쪽 다리는 다쳤는지 들고 있었고 왼쪽 다리는 큰 상처가 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KakaoTalk_20201105_203822198.jpg 화복이가 어렸을 때, 내가 화복이가 귀여워 일할때 데리고 나가 수레에 올려두고 일을 하곤 했다. 화복이가 겁이 많아서 내딴에는 사회화를 시킨다고 그랬다.


나는 당장 화복이를 케이지에서 꺼내어 차에 태웠다. 왼쪽 다리의 큰 상처는 봉합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 상태였고 부위가 피부의 탄성이 낮은 곳으로 봉합을 해보았자 다시 트더질 부위였다. 상처를 소독하며 자연적으로 새살이 돋아나도록 해야 했다. 문제는 오른쪽 다리였다. 팔꿈치에 큰 상처가 있었고 팔도 조금 부어 있었다. 나는 팔꿈치의 상처 때문에 다리를 못 딛는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의 첫 번째 실수였다. 내가 너무 화복이의 상처를 쉽게 생각했었다. 나는 화복이의 팔이 부러졌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부러졌다면 통증이 극심했을테고 내가 만지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화복이는 만지면 조금 싫어하는 정도였다. 화복이가 착해서 아픔은 꾹 참았던 것을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내가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게 된 때는 화복이의 상처가 나아도 팔을 쓰지 못하게 됐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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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01105_203238755.jpg 위의 사진은 왼쪽 팔의 사진이고 아래는 오른쪽 팔의 사진이다. 왼쪽 팔과 비교할때 오른쪽 팔꿈치의 골절이 보인다.


화복이를 병원에 데려가 사진을 찍어보자 팔꿈치 골절이었다.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내가 다니는 병원은 정형외과 선생님이 파트로 계시는 병원이었다. 하필 그때가 추석이었고 정형 선생님이 나오시려면 한참 후에나 가능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수술이 또 늦어지게 되었다. 골절은 시간이 지연될수록 골편을 제자리에 맞추기 힘들어 진다고 한다. 결국 수술을 하기 위해 정형 선생님이 풀타임으로 근무하시는 병원까지 내원하게 되었다. 왕복 4시간 거리의 병원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화복이를 태우고 병원으로 가서 다시 사진을 찍고 긴 상담을 했다. 결론은 수술을 해봐야 알수 있지만 성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나의 자책감은 하늘을 찔렀다. 어떻게 이렇게 멍청하게 대처를 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되집어보아도 일말의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KakaoTalk_20201105_203310952.jpg 화복이 다리가 온전했을 때의 사진을 보니 더 마음이 아프다. 화복이가 복오와 꽃복이와 놀고 있다.


화요일에 화복이를 맡기고 수요일에 수술을 들어갔다. 수요일에는 하루종일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부디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다른 보호자들도 이런 심정이겠구나 싶었다. 앞으로 환자가 입원하게 되면 더 자주 연락을 드려야겠다고 다짐하며 그 시간을 견뎠다. 그리고 마침내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아무래도 수술적으로 골편을 제배치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들렸다. 다리의 힘이 풀렸다. 일단 골편을 제거하고 수술을 마무리하겠다고 하셨다. 나는 나의 죄를 구원받을 마지막 기회마저 날아가 버렸다. 화복이는 재활이 잘 되면 오른쪽 앞다리를 딛으며 걸을 수 있게 될 것이고 아니면 평생 앞다리를 들고 다녀야 할 수도 있게 되었다.


KakaoTalk_20201105_203053546.jpg 화복이는 정말 착한 아이이다. 다른 아이들에게 으르렁 거리는 걸 본적이 없다. 그렇게 착한 아이에게 너무 큰 불행이 찾아왔다.


목요일에 화복이를 데리러 갔다. 수의사 할인을 받았음에도 150만원이라는 비용이 청구되었다. 할인해서 150이면 대체 다른 보호자들은 어떻게 수술을 받나 싶었다. 하루빨리 사람처럼 건강보험을 들던 세금을 내던 해서 모든 동물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병원비가 내려갔으면 싶었다. 화복이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와 가만히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화복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어떠한 말도 붙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화복이는 집에 돌아온 것이 너무 기쁜 듯이 가족들을 향해 연신 꼬리를 흔들며 자신의 머리를 갖다 댔다. 만져달라는 의미였다. 이렇게 이쁜 화복이를 내가 장애견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비통함에 빠져있는 나를 엄마는 조용히 다독여 주셨다. “괜찮아. 우리는 화복이를 사랑하고 화복이도 그걸 알고 있어. 화복이가 다리를 평생 절뚝인다고 해도 우리는 끝까지 화복이를 위해 배려하며 살테니깐 괜찮아.”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KakaoTalk_20201105_203040568.jpg 화복이가 오른쪽 다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자세로 못하는 것 없이 다 잘하지만 나는 너무 마음이 아플 뿐이다.


화복이는 엄마, 아빠. 나 이렇게 돌아가며 재활운동을 해주고 있다. 아직은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해서 해주고 있다. 화복이에게는 여러 번의 특식도 제공되고 있고 간식도 제일 크고 맛있는 부분을 주고 있다. 다행히도 화복이는 3발로 잘 걸어다니고 외출도 하고 그렇게 지내고 있다. 진정한 해피엔딩이 되기 위해서는 화복이가 아픈 다리를 딛고 일어서야 하겠지만 아직 그 과정 중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수의사가 아니었더라면 오히려 더 빨리 수술을 진행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자만했던 것이다. 이렇게 또 큰 아픔을 겪고 성장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여전히 화복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 죄가 씻어질지 모르겠지만 더 봉사하며 더 배려하고 더 신중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화복이는 건강한 아이니깐 분명히 일어설 수 있으리라 믿어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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