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들을 통솔하는 방법

나는 반려동물의 주인이 아니라 엄마다

by 손서영

방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눈복이한테 “눈복아!! 눈복아!!”하고 소리치고 있었다. 눈복이가 아마도 또 사고를 친 모양이었다. 간혹 아빠나 엄마는 아이들를 큰 소리로 꾸짖으실 때가 있다.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저리가”나 “저리 좀 가”이다(물론 큰소리라고 해도 별로 안 크고 매는 절대 드시지 않는다.). 아이들이 많다 보니 일을 할 때 좀 거슬릴 때가 많긴 하다. 앞으로 걸어가는 단순한 행동도 나의 아이들의 방해 공작으로 쉬이 나아가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도 그 단어가 좀 마음이 아프다. 이 아이들은 모두 갈데가 없어서 여기에 마음 붙이고 사는 애들인데 자꾸 저리 가라면 어디로 가라는 것인가. 물론 비약이 심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치만 그 단어를 들을때마다 나는 마음이 아파져서 내가 나서서 애들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가고는 한다.


나의 개들이 오후의 따듯한 햇살을 즐기고 있다. 언제나 편백이를 중심으로 아이들인 모인다. 역시 편백이는 타고난 리더다.


나는 개를 엄하게 대하거나 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서는 강아지 1마리를 잘 다룰 수 있을지 몰라도 개 25마리를 이끌지는 못한다. 진정한 리더는 호통치고 겁박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포 속에서 지켜지는 질서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흥분하였을 때에는 어떤 공포심도 힘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복종 훈련 따위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린지 오래이다.


가을이 짙게 내리워진 저수지에서 목을 축인 아이들이 하나 둘 올라오고 있다. 이제 다시 산책을 하자!!


나는 그보다 아이들과 교감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들이 진심으로 나를 믿고 의지하고 따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길을 걸을 때 나에게 달려오는 한 마리, 한 마리를 모두 쓰다듬어 준다. 내가 좋아서 나에게로 달려온 그 누구도 나는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다. 한번이라도 나의 손길과 나의 눈맞춤을 담아서 그 아이의 호의에 보답한다. 시간을 내어서 오래 쓰다듬어 주고 싶지만 매번 그럴수는 없다. 그래도 적어도 한번씩은 꼭 쓰다듬어주고 눈을 맞춘다. 물론 너무 바쁠 때, 예를 들면, 출근 시간에 나의 출근길을 방해하는 아이들에게 일일이 다 답해줄 수는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때에도 나는 단 한번도 아이들에게 비키라고 짜증내지 않는다. 사실 짜증이 나지 않는다. 생떼같은 내 자식들을 두고 떠나가야 하는 것이 매번 마음이 아플 뿐이다.


나에게 달려들어 이런 얼굴을 내미는데 어떻게 안이뻐 할수가 있겠는가. 나는 내 아이들이 이뻐 죽겠다.


이렇게 애들을 이뻐만 하는 나를 두고 부모님은 예절교육을 안시킨다며 그래서 애들이 제멋대로라고 뭐라고 하실때가 있다. 내가 봐도 내 애들은 모두 말썽쟁이들이다. 그래도 나는 그게 건강하다는 뜻 같아서 싫지 않다. 나는 풀이 죽어있는 아이들보다 제멋대로 말썽부리는 아이가 훨 낫다. 기가 살아서 자기들이 무척이나 이쁜 개인줄 알고 살았으면 좋겠다. 과거 따위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지금 이 순간 즐겁고 명랑하게 마음껏 기펴고 살았으면 좋겠다. 물론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일은 절대 하지 못하도록 해야겠지만 그 외에 말썽은 그냥 조용히 치워주면 된다. 철들면 다 안하게 되어 있다. 물론 그게 나쁜 짓이라는건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그 정도만 혼을 내면되지 매를 든다거나 소리를 지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님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나에게 애들을 통솔하라고 도움을 요청하시는 것만 보아도 나의 아이들은 끈끈한 유대감만으로도 잘 다루어 진다.


아직도 예복이의 품에서 자고 싶어하는 얼룩이다. 예복이가 자는 곳에 항상 붙어서 잔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나의 아이들은 가끔 내 손길을 귀찮은 듯 피할때가 있다. 그러면 그게 또 기분 좋다. 조금 서운한 감정도 들지만 내 아이들이 적어도 사랑에 목메이도록 키우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잘 때 소복이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고 뽀뽀해주면 돌아누워 버린다든가, 나에게 뛰어와서 기분좋게 발도장 찍는 애들을 나도 반가워 쓰다듬어 줄려고 하면 홱 돌아서 뛰어가버린다든지 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내 옆에 꼭 붙어서 자면서 내 뽀뽀는 싫어하는 소복이나 반가워서 뛰어와놓고 상대가 인사하기도 전에 가버리는 심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게 내 아이들이다. 나는 머쓱한 손을 내리며 다른 아이를 또 쓰다듬으면 될 뿐이다. 나에게는 너무도 많은 아이들이 있기에 내 손은 언제나 분주하다.

천사같은 모습으로 먼저 유혹해놓고 내가 뽀뽀라도 하면 질겁을 하고 돌아눕는다. 그래도 나의 구애는 끈질기다. 결국 몇번 뽀보해주고 잔다.


우리는 사랑스런 나의 개가 하늘의 별이 되려고 할 때 비로소 나의 개에게 좀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하지 않은 것과 좀 더 많이 교감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런 후회를 너무도 많이 해서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더 많이 더 오래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고 서로 체온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 모든 생명에 대해서도 우리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자유와 어떤 고통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개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지나친 처벌을 가하는 것은 절대로 없어져야 할 통습이라고 생각한다. 반려동물은 내 멋대로 움직여주는 기계가 아니다. 반려동물은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이다. 그 가치를 알아주고 보듬어주고 지켜주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저 햇살처럼 모든 아이들의 미래가 밝기를 바래본다. 그런 의미에서 열심히 앞으로 걸어나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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