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밀러의『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희망을 품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술을 마시는 것. 레드와인이든 맥주든 위스키든 상관없었다. 나는 여전히 시카고에 머물고 있었다. 시카고에 온 지 두 달이 지나고 있었다. 어느덧 12월이었다...... 헤더와 나는 매일 저녁 요리하고 영화를 보고 때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간을 채웠다. 나는 모든 활동에 알코올음료를 꼭 하나씩 끼워 넣었고, 거기에 하나를 더, 또 하나를 더 끼워 넣었다. 아무 근거 없이 흡족함을 느끼는 건 아주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나는 나의 웃음을, 나의 미소를 만들어주는 샘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튿날 아침잠에서 깨면 역시나 세상은 더 황량하게 느껴졌고, 물론 내 얼굴은 더욱더 부어서 정떨어져 보였지만, 나는 그냥 저녁이 되기를, 그 모든 걸 다시 탄산 거품이 터지듯 보글보글 활기차게 만들 수 있게 될 그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장안의 화제인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쓴 라디오 PD 룰루 밀러는 매혹적인 스토리텔러다. 나는 남자친구와 잘 지내다가 어느 날 여행에서 만난 매혹적인 소녀와 자게 되는 바람에 그와 헤어진 이야기와 더불어 술 마시는 이 얘기에도 매료되었다. 이 글을 읽으니 그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이상한 분류학자에 매료되어 그의 행적을 미친 듯이 쫓아다니는 게 이해가 되었다. 아직 그녀는 데이비드를 추앙하고 있다. 책의 뒤쪽엔 대단한 반전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기이할 정도의 호기심과 탐구력, 팬심, 문장력으로 이 책을 썼다. 요즘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지식인이 아닌 것처럼 평가되고 있는 현상은 그녀의 이런 '잘남' 때문이 아니까 생각되지만 나는 일단 그녀의 배짱과 문장력만 즐기기로 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자마자 (독후감이 아닌) 독중감을 쓰기로 한 것이다.
새벽에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지만 이것도 다 회사를 다니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일이다. 회사를 그만두기를 백 번 잘했다. 결론이 이상하다.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