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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25. 2019

A4지 두 장과 볼펜 한 자루가 탄생시킨 신선한 스릴러

 마당이 있는 집

부산 여행 가는 날 아침 서울역에서 샀던 스릴러 소설 <마당이 있는 집>을 돌아오는  KTX 안에서 다 읽었다.

김진영이라는 작가는 한예종 영화과를 졸업하고 단편영화 작업과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었는데 2016년 정월에 개인적으로 뭔가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에 시달리다가 충동적으로 10박 11일짜리 명상 코스에 등록을 해버렸다고 한다. 휴대전화는 물론 아무것도 읽거나 쓰지 못하는 규칙에 자유를 느낀 것도 잠시, 며칠 만에 다시 예전 상태보다 감정적으로 더 안 좋아진 자신을 발견한 작가는 산이고 바다고 멋진 전망이고 다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몰래 옷 사이에 숨겨 들어왔던 A4지 두 장과 볼펜을 꺼내 '멋진 창을 가진 여자와 그렇지 못한 여자가 가지는 뒤틀린 연대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소설이 바로 <마당이 있는 집>이다. 흥미진진하게 잘 읽히는 범죄소설이다. 그러나 범죄를 구성하는 디테일보다는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곳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거나 임신부가 남편을 계획 살해한다거나(이 정도는 스포일러가 아니니 화 내지 마시길) 하는 기본 설정에 더 방점을 찍은 느낌이다. 결말도 조금 더 친절하고 완만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도 살인의 이유가 개인적 실존과 연결되어 있는 점이 믿음직했고 과대망상이나 조건만남 등의 소재를 맥거핀으로 적절히 이용한 점도 좋았다.

시나리오로 쓸까 하다가 소설로 방향 전환을 했다고 한다. 처음 계획대로 시나리오로 나와 여러 사람 손을 거쳤으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밋밋해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데뷔작으로 이 정도면 매우 훌륭하다. 작가가 홧김에 명상 코스 비슷한 거 하나만 더 등록하면 우리는 멋진 스릴러를 또 하나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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