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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Sep 27. 2022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부른다

판소리에서 밴드 이날치까지 - 현경채의 『오늘, 우리의 한국음악』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부른다.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집 마당에서 열리는 소금책 행사 1회 '최예선 작가 편'에 왔던 거문고 연주자 안정희 선생은 지난주에 있었던 소금책 '요조 작가 편'에 손님으로 와서 아내와 나를 현경채 선생의 북토크에 초대했다. 그러니까 현경채 선생은 윤혜자와 최예선, 요조, 안정희 등 좋은 사람들의 연결을 타고 내게로 오신 분이다.

현경채 선생은 책날개에 음악평론가, 음악인류학 박사로 소개되고 있지만 책을 낸 지 일주일 만에 2쇄를 찍은 베스트셀러 여행작가로도 이름 높은 분인데 나는 지금까지 성함 정도만 들어 알고 있는 정도였으니 여러 모로 죄송하고 민망한 일이다. 토요일 행사장에 가면 책을 살 수 있을 거라며 아무 생각 없이 쭐래쭐래 옥수역 고가 밑에 있는 '다락 옥수'에 간 아내와 나는 공공건물이란 안에서는 서적을  팔고 살 없다는 사실을 듣고 당황했다. 다행히 행사의 사회와 거문고 연주를 맡은 안정희 선생이 우리 부부를 현 선생에게 소개하자 SNS를 통해 자주 봤다며 현경채 선생이 'VIP용'으로 챙겨둔 책을 한 권 선물해 주셔서 미리 읽어 볼 수 있었다(너무 죄송해서 행사가 끝나고 저자 싸인을 받는 자리에서 책값이 든 봉투를 슬쩍 건네드렸다. 공짜로 책을 받는 것만은 절대 하지 말자는 아내의 원칙 때문이었다).


행사는 기대 이상으로 멋졌다. 안정희 선생의 사회는 자분자분 고급스러우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는 진행이었고 책을 낭독해  '위대한 정가' 프로듀서 한덕택, 선생의 남편이자 가객인 문현과 거문고 안정희의 공연도 기가 막혔다. 객석에는 부산, 대구, 안동, 춘천, 고양, 군포   곳에서  분들이 많았는데 '세노야' 작곡가  선생, 연기자 하윤주, 무용극 '바리' 주인공인 이희문 선생  문화계의 유명 인사들도 빼곡하게 북토크 객석을 채우고 있었다. 이날 출연자 중에는 입과손 스튜디오(유튜브에서 'IPKOASON' 검색하시라) 소리꾼 김소진이 고수 이향하와 함께 수궁가  대목을 들려줬는데 아마도이자람밴드의 팬인 우리 부부는 이향하 고수 바로 옆에 앉아 있다가 그가 일어나 공연하러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뜻밖의 행운에 신이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행사에서 가장 좋았던 건 역시 『오늘, 우리의 한국음악』라는 새 책을 토대로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현경채 선생의 음악과 인생 이야기보따리였다. 현 선생은 1976년 국악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처음으로 국악에 심취해 눈물을 쏟은 이야기부터 시작해 서울대에서 가야금을 전공한 언니 덕에 이론으로 방향을 선회한 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일, 유학에서 돌아와 생계를 위해 중국 무협 비디오 번역 아르바이트하던 이야기 등등을 너무나 재미나게 들려주었다.

이젠 세계인의 음악으로 떠오른 국악의 위상을 얘기할 땐 '완성도만 높으면 장르 불문하고 듣더라'라면서 그 예로 K장영규라는 베이시스트가 이날치 밴드를 만들기 전에 어떤 과정들을 거쳤는지에 대해서도 슬쩍 알려주었다. 음악과 문화에 대한 선생의 경험과 지식은 끝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스마트폰 때문에 고급 오디오가 아예 없어지다시피 한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이었다. 스마트폰 때문에 역설적으로 국악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은 공연장에 가서 직접 들을 이유가 더 절실해졌다는 것이다. 국악의 고급스러운 향취를 온몸으로 느끼려면 공연장에서 배음까지 모두 음미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연이 끝나고 현 선생의 책을 빠짐없이 다 읽었다는 어느 독자가 '선생의 그 에너지는  어디서 오느냐'라고 질문하자 현경채 선생은 '아직 철이 안 들었다'는 농담과 함께 끝없는 호기심을 꼽았다. 역시 대가의 마음은 어린이와 통하는 데가 있고 반면 인생에서 궁금한 게 없는 이는 사는 재미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집에 와서 책을 펴 들고 읽었다. 아무 데니 펼쳤는데 '고전이 위대한 것은 바로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를 담고 있어 수많은 해석과 재창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 툭 튀어나온다. 이 책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맹사성과 박연을 다룬 챕터의 첫 문장은 읽으면서 입이 떡 벌어진다. (업적이 뛰어난 왕은 늘 용인술이 탁월했다. 조선 음악사에서 가장 눈부신 성과를 이룬 세종 곁에는 박연과 맹사성이 있었다. 둘은 악기 연주도 수준급이었을 뿐 아니라 음악에도 능통한 신하였다.) 고종이 약방기생 석경월을 잔치에 불러 <수양산가>를 부르라는 어명을 내리자 당황한 석경월이 장안의 소문난 노래 선생 장계춘을 찾아가 하룻밤을 꼬박 새워 노래를 배워 과업을 수행한 이야기도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북토크를 놓쳤다고 너무 억울해하실 것 없다. 책을 읽으시라. 정말 재밌을 뿐 아니라 다 읽고 나면 교양과 호기심이 자동으로 쌓인다에 거액을 걸 용의가 있다. 현경채의 『오늘, 우리의 한국음악』을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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