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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Oct 27. 2022

호두 망치

호두 망치로 생수병도 딸 수 있다니!

집에 돌아와 보니

호두 망치라 쓰여 있는  

택배 상자가

대문 앞에 놓여 있었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길래

호두 망치가 왔어, 했더니

호두를 까보라고 했다

툇마루에 앉아 호두를 깠다

호두 망치 포장지엔

호두속은 망가지지 않고

호두 껍질만 갈라 놓습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호두속'은 붙이는 거구나,

UX라이터의 치밀한

띄어씌기에 감탄했다


'한번에 무리한 힘을 가하면

파손의 우려가 있으니

여러 차례 호두를 돌려가며

힘을 가하라'는 사용방법에 따라

나는 신중하게 호두를 깠다

호두는 쉽게 껍질을 버리고

망치 아래 망연자실 누웠다


나도 호두 망치만큼

쓸모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  

생각하며 뒷면을 보니

호두 망치로는 생수병도

딸 수가 있는 것이었다

베트남산 호두 망치가

에비앙 뚜껑을 돌리고 있었다

이름은 망치지만

망치기는 커녕

일을 아주제대로 했다


마침 고양이 순자가 왔다

너나 나나 참

할 줄 아는 게 없어, 그치

우리는 무용지물로 살자,

라고 말하자

순자는 애앵하고 울었다

순자는 진짜

할 줄 아는 게 너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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