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Oct 09. 2022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둘리네 분식과 윤석열차

요즘은 현금을 가지고 다닐 일이 거의 없다. 어디서든 신용카드  장이면  통하고 위급한 상황이 왔을  말고는(급똥천사 사건 참조 https://brunch.co.kr/@mangmangdylujz/1025) 지폐를  일도 거의 없다. 그렇지만 나는 요즘도 지갑에 약간의 지폐를 넣고 다니려 노력하는 편이다. 재래시장이라든가 길거리에서 물건을  때는 아무래도 카드보다 현금을 내는  마음이 편해서다. 어제도  지갑 속의 현금이 빛을 발했다. 아내와 나는 김세환 배우가 출연하는 연극 《한남의 광시곡》을 보려고 대학로에 나갔다가 늦은 점심을 먹으러 '둘리네 분식'이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다른 식당은 '런치 타임 브레이크' 걸릴 시간이라 들어갈 수도 없었다.


우리가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남자 사장님이 "말씀드릴 게 있는데,  우린 카드가 안 돼."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으며 메뉴판을 살짝 보니 밥값이 말도 안 되게 쌌다. 나는 현금을 드릴 수 있으니  걱정 마시라 하고는 카레밥을 달라고 했다. 아내는 쫄면을 선택했다. 우리 옆자리 커플은 현금이 없는지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저는 계좌이체를......"이라고 했으나 남자 사장님이 잘 못 알아듣는지 자꾸 딴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아니다 다를까 주방에 있던 여자 사장님이 "아이고, 내가 알아서 해줄게요. 저이는 계좌이체가 뭔지도 몰라."라며 웃었다. 그러나 남자 손님은 마음이 안 놓이는지 "요 앞에 은행 가서 돈 좀 찾아올게요."라고 말하고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착한 사람처럼 보였다.


밥값은 너무 싼데 비해 음식의 양은 엄청났다. 아내는 카레밥을 다 먹은 내게 자신의 쫄면을 조금 덜어주면서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의 단골집일 거라고 속삭였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은 대학로 배우들에겐 그야말로 든든한 후원자 같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메뉴판 옆에 붙어 있는 안내문이 너무 다정하고 귀엽다고 감탄했다.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 '둘리네 분식과의 약속'이라는 제목 밑엔 음식을 남기지 말라는 부탁을 비롯해 물은 셀프, 휴지를 처리하는 방법 등이 쓰여 있었는데 특히 두 번째 '두 분이 와서 하나는 안 돼요' 항목에는 괄호를 치고 '음식값이 너무 싸잖아요! 이해해 주세요.'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아내는 말을 참 순하고 예쁘게 한다며 스마트폰으로 안내문 사진을 찍었다. 순한 사람을 좋아해서 고양이 이름조차 순자라고 지었던 아내이니 그 글의 태도를 좋아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나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세찬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라는 옛날이야기를 떠올렸다.


요즘 문체부가 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 두고 벌이는 일련의 조치는 어리석기 그지없다.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만화영상진흥원에는 '노골적으로 정치적 주제를 다룬 작품을 선정해서 행사 취지에 어긋났다'  이상 예산 지원하지 않겠다고 협박을 하고 학생 작품에 대해서도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그것도 직접   아니라 친여 성향의 신문을 통해서). 이에 영국 작가가 직접 나서서 표절이 아님을 설명하기에 이르렀지만  찝찝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조선일보에서 학생이 다니는 학교를 밝히는 바람에 지금  학교로 욕설과 비난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풍자와 과장, 자유로운 상상력을 주요 특징으로 삼는 만화 대회를 가지고 이럴 일인가.  한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둘리네 분식에 와서 안내문을 쳐다보기 바란다. 정색하고 엄포를 놓거나 트집을 잡아서 헤게모니를 잡으려 하면 언제나 반발을 부를 뿐이다. 사안을 대하는 태도 하나하나가 민심을 만든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바람이 아니었음을 잊지 말자.

매거진의 이전글 만날 때는 독자였는데 헤어질 때는 작가시군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