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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28. 2022

똑똑한 배우들이 만든 신나는 드랙쇼 연극

연극《클럽 GWEN》

오디션에서 떨어져 할 일이 없어진 배우 김본이는 생각한다. 아무도 날 캐스팅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연극을 만들어 나를 캐스팅하면 되잖아. 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볼까? 지난번에 은주 언니가 데려간 이태원 클럽 '트랜스'의 드랙 쇼가 진짜 죽이던데. 그걸 연극으로 만들 순 없을까? 비록 퀴어문화를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김본이지만 거기엔 그녀가 좋아하는 모든 게 다 들어 있었다. 화려한 화장과 조명, 의상, 격렬한 춤과 노래, 그리고 그 안에서는 뭘 해도 다 용인된다는 자유로움까지! 그래 , 해보자.  마침 놀고 있던 현림 언니에게 얘기를 했더니 당장 만들어 보자고 한다. 극 초반부에 "남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여기서는 어떤 걸 해도 다 괜찮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괜찮다의 '괜'에서 클럽 이름 '그웬'이 나왔다. 귀엽고 재미있는 발상이다. 두 여배우의 하이 파이브에 동료 배우들이 모여들었다. 다른 공연을 하고 있던 유종연은 "오빠, 오셔서 그냥 무대 위 바텐 역할 정도만 해주면 돼요."라는 말을 듣고 왔는데 약속에 없던 대사가 몇 마디 생기더니 급기야 춤도 추고 립싱크까지 해야 한다지 않나. 또 당했구나 생각했지만 그래도 극본이 재밌으니까 인단 해보기로 하고 뒤늦게 합세했다. 드랙 아티스트들은 과장된 표정과 춤이 특징이자 재미 포인트다. 그래서 출연자들은 최대한 자기가 좋아하는 곡을 골랐다. 그래야 춤도 립싱크도 진심과 열정이 120% 묻어 날 테니까.

현림 작·연출·출연에 김본이가 제작과 출연을 겸한 드랙쇼 연극 《클럽 그웬》을 일요일 오후에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보았다. 13년간 마날라 언니(?)가 운영하던 '클럽 그웬'이 코로나 19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일주일 후에 문을 닫게 되었다는 설정이다. 마지막 일주일 간 벌어지는 무대 위의 드랙쇼는  어떤 모습이 될까? 커튼이 열린 무대는 기대 이상이었다. 비키니에 가까운 짧은 의상을 입은 김본이는 뉴진스 음악을 준비했고 수피(현림)는 ‘싱글 레이디’를, 13년 단골손님이었던 도원 역의 양은주도 과감한 의상을 입고 '아모르파티'를 외쳐 모두를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뚱뚱한 몸매의 유종연이 임상아의 '뮤지컬'을 부를 때는 재밌으면서도 처연해져서 좀 찡할 정도였다. 관객들의 열광도 대단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개막 공연 날이라 이태원 트랜스에서 진짜 드랙쇼를 하는 아티스트들이 단체 관람을 왔다는 것이었다. 극 후반엔 무대 한쪽 테이블에서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오렌지 주스와 연한 보드카 칵테일이 있어서 분위기는 더욱 흥겨웠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김본이와 현림이 제작에 얽힌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관객 중 누가 유종연에게 "유민상 닮았어요."라고 했더니 유 배우가 화를 내는 척하다 웃으며 사실은 그런 얘기 자주 듣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성도 같은 유 씨라서 "거봐, 연극할 땐 본명으로 활동하잖아." 같은 소릴 듣는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쇼에 나오는 곡들이 모두 좋던데 저작권은 어떻게 했냐고 물었더니 이미 저작권 협회에 다서 다 해결했다고 김본이가 대답했다. 미리 신고하고 내라는 돈만 내면 되는데 귀찮아서 그걸 안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역시 똑소리 나는 배우들이었다. 김본이 배우가 제작자 이름에도 올라 있는 것에 대한 질문에는 "저희 다 등골 브레이커예요."라며 부모님들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마침 엄마가 오셨다고 객석을 가리켰는데 바로 아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여서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재밌고 제작 의도도 좋은 연극을 한 편 보았다. 작고 가벼운 나비의 날갯짓이 커다란 태풍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 연극도 마찬가지다. 오디션에 떨어졌던 두 사람의 궁리가 세계 무대까지 뻗어가는 콘텐츠로 변할지 누가 알겠는가. 일주일만 하고 내리기엔 너무 아깝다는 소리가 나왔고 아내도 "좀 더 손을 봐서 지속적으로 계속 공연하는 걸 보게 되면 좋겠다"라고 했다. 11월 30일 수요일까지 연우소극장에서 쉼 없이 상연한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꼭 보시기 바란다. 관람료는 겨우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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