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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04. 2022

답답한 청춘들을 위로하는 연극

《노란달: 레일라와 리의 발라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칸 영화제 그랑프리작《피아니스트》엔 이자벨 위페르가 욕실에서 자신의 허벅지를 면도칼로 그으며 자해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제 대학로 시어터 쿰에서 본 연극 《노란달: 레일라와 리의 발라드》에도 똑같은 짓을 하는 소녀가 나온다. 이들은 왜 자해를 하는 걸까. 자신이 처한 현실이 너무 답답하고 괴로워 견딜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손목을 칼로 긋곤 하는 《노란달》의 주인공 레일라 술래이만은 모범생이지만 말이 없고 연예인 잡지에 탐닉하는 아웃사이더다. 그녀는 잡지를 들춰보고 돌려놓은 편의점 앞에서 마을을 말썽쟁이 리 매클린드를 만난다. 레일라에게 벙어리라고 놀리는 리는 알고 보니 방금 엄마의 남자 친구를 칼로 찔러 죽였단다. 더 이상 마을에서 살 수 없게 된 리는 아빠가 남긴 엽서 한 장을 들고 북쪽으로 아빠를 찾으러 가겠다고 결심한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레일라에게 "나랑 같이 가자. 갈 거지?"라고 묻는 것이다. 황당한 제안이지만 갑자기 귀가 솔깃해진 레이라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의 손을 잡고 북쪽으로 달린다.


아침에 리뷰를 쓰려고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노란달》의 극본을 쓴 데이비드 그레이그가 《카사노바》와 《터칭 더 보이드》도 쓴 작가였다니. 각각의 작품을 놓고 봐도 '올해의 연극'이라 꼽을 만큼 뛰어난(아내는 '카사노바'를 보고 지현준 배우의 열혈 팬이 되었다) 작품이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작가는 괴물 아닌가.  '카사노바'와 '터칭 더 보이드'는 극본뿐 아니라 공간 구성도 독특했는데 이 연극 역시 시소를 닮은 구조물 두 개를 무대 중앙에 배치하고 배우들이 그 위에 오르내리며 연기하도록 하고 있다.


배우들은 시소를 오르내리며 대사만 주고받는 게 아니라 소설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상황을 설명하는 역할까지 번갈아 맡아야 했는데 다행히 권주영 박신운 심은우 안진효 네 명 모두 성량과 딕션이 좋아서 한 시간 반 동안 충분히 연극에 몰두할 수 있었다. 특히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했던 심은우 배우의 연기에 감탄했다. 극장이 좀 추워서 힘들었던 것 말고는 불만이 없었던 연극이다. 대학로 시어터 쿰에서 오늘까지 상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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