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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14. 2022

뚝도시장 서울맛집에서 만난 사람들

시장에 오면 늘 살아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성수동 살 때 아내와 함께 뚝도시장에 서 자주 밥도 먹고 술도 마셨는데 특히 자주 갔던 집이 '준이네'와 ‘서울맛집'이었다. 1986년부터 뚝도시장에서 장사를 해 온 서울맛집은 아내 윤혜자가 올린 글과 사진이 다음 포털 메인화면에 노출되는 바람에 손님이 크게 늘었다며 늘 우리를 반겨 주셨다. 무심코 다닐 땐 몰랐는데 알고 보니 사장님은 이 집의 따님이었고(인스타그램 팔로워가 6만 명이 넘는 인플루언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직원이었다. 부모님이 운영하다가  2세가 성장하니까 젊은 피를 수혈한 것이다.

오늘 성수동에 있는 커뮤니티 '우리 동네 성수다방'에서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 글쓰기 강연을 하는 날이라 좀 일찍 와서 서울맛집에 갔다. 사장님은 없고 어머니 혼자 계시길래 감자탕을 달라고 하고 앉아 있으니까 곧 사장님이 들어오셨다. 오랜만에 먹는 감자탕은 메뉴판에 있는 설명대로 국물이 끝내줬다. 한참 맛있게 먹고 있는데 사장님이 수육 접시를 들고 와서는 "한 번 드셔 보세요."라고 했다. 다른 가게는 수육을 뜨겁게 내는데 여기는 차가워도 맛있는 수육을 표방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이름도 없어요,라고 하길래 먹으면서 아이데이션을 좀 해보겠다고 했다.


밥을 먹다가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한 장을 찢어 메모를 시작했다. 뜨겁지 않다는 걸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하다가 섭씨로 고기의 온도를 표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 위에 '차가워도 맛있는 4℃ 수육'과  '상온이라 더 맛있는 4℃ 수육' 이렇게 두 가지 슬로건을 써서 보여 주었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버지가 들어오시더니 내가 쓴 슬로건을 보고 매우 기뻐하셨다. 어떻게 그렇게 금방   4℃ 수육이라는 생각을 했냐고 칭찬하시면서 딸에게 감자탕 값을 받지 말라고 외쳤다. 그러나 나는 이미 현금으로 계산을 한 상태였으므로 사장님은 울상을 지으셨다. 내가 아내와 함께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했더니 그때는 위장을 텅텅 비우고 오시라며 웃으셨다. 아버지는 내 근황을 물으며 다른 손님은 다 잊어도 이상하게 '편성준'이라는 이름은 잊히지 않는다고 하셨다. 고마운 말씀이었다. 시장에 오면 늘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올 때마다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니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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